'보이스피싱'과 '딥페이크' 등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한 범죄가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위조 의료서류를 만드는 데까지 AI가 활용되면서 보험사기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는 추세다.
민영보험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보험사기를 적발하고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한 대응 체계 마련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를 악용한 보험사기로 고통받는 납세자들. AI로 생성한 이미지.
국민건강보험 재정 운영은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강청희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방안을 두고 "안정적인 국고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재정 문제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다는 지적을 놓고는 "8년 전 공단 급여이사를 할 때도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우려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건보공단의 2026~2030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건강보험 영업적자는 올해 6조9161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는 의료 이용 증가와 함께 보험급여를 부당하게 청구하는 보험사기 등이 꼽힌다. 더욱이 최근에는 AI를 활용해 허위 의료서류를 제작하는 등 기존 방식으로는 적발하기 어려운 보험사기 수법까지 등장하고 있다.
위조 흔적마저 감쪽같이 지우는 AI... 진화하는 보험사기
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는 올해 6월4일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참여하는 'AI 기반 보험사기 방지체계 구축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보험사기 과정에서 민영보험금뿐 아니라 건강보험 급여까지 부당하게 청구될 수 있어 건강보험 재정 누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처이다.
금융감독원(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민영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1조1571억 원으로 집계됐으며, 적발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실제 보험사기 규모가 약 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보험 종목별로는 실손보험 등을 포함한 장기손해보험의 비중이 44.7%로 가장 높았다. 이어 자동차보험 22.4%, 생명보험 21.8%, 일반손해보험 11.2% 순이었다.
실제로 부산에서는 20대 A씨가 병원에서 발급받은 입·통원 확인서와 진료비 계산서, 진료비 세부내역서 등을 촬영한 뒤 생성형 AI를 활용해 입·퇴원 기간과 병명 등을 바꾼 허위 서류를 제작한 사례가 확인됐다. 금융위는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진단서를 AI로 위·변조하거나, 실제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도 진료받은 것처럼 진료비 계산서를 조작한 사례도 소개했다.
문제는 AI가 문서의 일부만 수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류 이미지 전체를 새롭게 생성하거나 변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글꼴이나 자간, 픽셀의 불일치 등에서 위조 흔적을 찾을 수 있었지만, AI를 활용하면서 이러한 단서가 줄어들어 진위를 판별하기가 한층 어려워졌다.
보험업계는 AI를 활용한 보험사기를 적발하기 위해 자체 탐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개별 보험사가 보유한 정보만으로는 다른 보험사나 공공기관의 자료와 대조하는 데 한계가 있어, 기관 간 정보 공유와 교차 검증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보험사기 대응 나선 금융당국... 정보 공유 체계 구축 추진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 모습. ⓒ연합뉴스
현재 TF는 AI를 악용한 보험사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유관기관, 보험업계가 참여해, 구축방안을 마련하고 후속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세부 과제는 △보험사기 혐의 정보의 집중·공유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 △보험사기 탐지에 필요한 추가 정보 선정 △보험업권과 유관기관 간 실시간 정보 공유 방안 마련 △AI를 활용한 보험사기 패턴 분석 및 위험지수 개발 등을 꼽았다. 보험사기 공모자와 보험설계사 등의 인적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기관별로 분산된 정보를 연계해 사기 의심 사례를 조기에 포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보험사기 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한 포상 제도도 확대된다. 금융감독원은 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 및 보험사와 함께 운영하는 보험사기 특별 신고·포상 기간을 기존 3월 말에서 오는 10월31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신고 대상과 유형에 따라 특별 포상금도 차등 지급한다. 병·의원 관계자를 신고했을 경우 최대 5천만 원, 브로커와 자동차 정비·렌터카 업체 관계자는 최대 3천만 원, 일반 환자 등은 최대 1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은 고령화에 따른 의료·돌봄 수요 증가로 재정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장기요양 수급자는 2022년 101만9천 명에서 2024년 116만5천 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장기요양보험 수입은 약 2조 원 증가했지만 지출은 약 2조7천억 원 늘어 수입 증가 폭을 웃돌았다. 또한 병원에는 의료사고 배상보험료가 들어간다. 정부는 분만·소아·응급의료 등 필수의료 분야의 고액 배상보험료를 지원하며, 2026년 기준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 1인당 연 175만 원 상당을 국가가 부담한다.
AI를 악용한 보험사기로 건강보험 급여가 부당 청구되면 건강보험 재정 누수가 커질 수 있다. 누수가 누적되면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 지원 확대 등으로 재정을 보전해야 하므로, 재정 운용의 여력도 제한될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국고 지원과 보험료 수입 관리가 중요한 과제로 거론되는 가운데, AI를 악용한 보험사기 수법이 정교해지는 만큼 관련 기관 간 정보 공유와 탐지 기술을 고도화하고, 부당 청구를 신속하게 적발할 수 있는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