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한 마을에서 수돗물 대신 슈퍼마켓에서 물을 받아와 마셔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얼어붙었던 땅이 녹으면서 식수원에 중금속이 흘러든 탓이다.
주민 약 2600명이 사는 이 마을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1년 넘게 수돗물을 마시지 말라는 권고가 이어지고 있다.
2023년 4월5일(현지시각)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롱위에아르뷔엔 인근의 북극 산악 지대가 눈에 덮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일(현지시각)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 있는 롱위에아르뷔엔이 영구동토층 해빙에 따른 수질 오염으로 식수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마을 주민들은 현재 지역 슈퍼마켓에 마련된 급수 시설에서 물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지역 맥주 양조장의 정수 시설을 거친 물을 지방정부가 무료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집에서 수도꼭지를 틀어 마시던 물을 이제는 직접 용기에 담아 운반해야 한다.
식수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당시 지방정부가 실시한 수질 검사에서 망간 농도가 노르웨이 공중보건연구소 권고치인 리터당 50마이크로그램(㎍)의 25배까지 치솟은 사실이 확인됐다.
망간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금속 성분으로, 고농도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신경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영유아와 어린이는 더욱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망간 농도는 낮아졌지만 식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올해 들어 황산염과 니켈 농도가 권고 기준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현재 망간 농도가 건강상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하면서도 수돗물을 마시지 말라는 권고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샤워나 세탁 등에는 사용할 수 있다.
식수원에 중금속이 유입된 배경으로는 북극의 급격한 기온 상승이 지목된다. 롱위에아르뷔엔은 지구 북극점에서 약 1300㎞ 떨어진 곳으로, 지구상에서 기온이 가장 빠르게 오르는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온난화 속도가 세계 평균의 5~7배에 이르며, 가을철 기온은 10년마다 최대 4도씩 상승하고 있다.
기온 상승은 땅속 환경까지 바꿔놓았다. 오랫동안 얼어 있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지하에 묻혀 있던 암석이 물과 공기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 지역 암석에 포함된 '황철석'이다. 황철석이 물과 산소에 닿으면 산화 반응을 일으켜 산성 물질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암석 속 금속 성분이 녹아 나와 주변 하천과 호수로 흘러들면서 식수원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분석된다.
롱위에아르뷔엔은 길이 약 2.5㎞의 댐으로 막힌 호수 '이스담멘(Isdammen)'에서 식수를 공급받는다. '얼음 연못'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가 기온 상승으로 오히려 오염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당장 주민들이 마실 물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일은 더 큰 난제다. 테리에 아우네비크 롱위에아르뷔엔 시장은 기존 상수도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새 시설을 구축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수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극한 환경에서도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하는 기술적 어려움까지 겹쳐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 같은 식수 오염이 롱위에아르뷔엔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금속을 품은 암석과 영구동토층은 캐나다 북부와 미국 알래스카 등 북극의 다른 지역에도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온이 오르고 얼어붙었던 땅이 녹을수록 비슷한 수질 오염이 곳곳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롱위에아르뷔엔의 식수 위기가 북극 지역사회에 닥칠 또 다른 위협의 예고편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