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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이 과거 유동성 위기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반도체와 에너지를 축으로 새로운 성장판을 키우고 있다. SK실트론 인수와 전자BG 부문의 대규모 증설, 두산에너빌리티의 설비투자까지 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대형 프로젝트가 잇따르면서 성장의 속도만큼이나 자금 운용의 무게도 커지고 있다.

성장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만큼 이를 감당할 재무 관리 역량도 필요하다. 2020년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섰던 두산그룹으로서는 과거 유동성 위기의 전철은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미래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적기에 투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을 확대하고 그룹 재무를 총괄해 온 김민철 두산 지주부문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배경에도 이런 과제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자산 매각과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유동성 위기 극복에 기여한 김 부회장은 이제 반도체와 에너지 분야의 대규모 투자를 뒷받침하면서 성장 재원을 마련하고 재무부담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두산그룹 박정원 '제2의 유동성 위기'는 없다 : CFO 10년차 맞는 김민철, 반도체·에너지 대규모 투자 완수 특명
김민철 두산 각자대표이사 부회장 겸 지주부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두산그룹의 사업 확장 국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허프포스트코리아

19일 두산그룹 안팎에 따르면 박 회장이 이른 시점에 핵심 승진 인사를 단행한 것은 리더십을 신속하게 재정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두산그룹은 16일 두산 지주부문 CFO인 김민철 사장과 두산에너빌리티의 CFO인 박상현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인사를 실시했다. 앞서 9월 말 두산로보틱스에서 권영민 사장을 새 대표로 내정한 데 이어 올해 사장단 인사에 방점을 찍었다.

이는 박 회장이 연말 인사에서 지난해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지난해 두산그룹은 12월 계열사 전반에서 상무 17명을 신규 선임하는 것으로 조용한 인사를 마쳤다. 반면 올해는 계열사 1곳의 대표를 교체하고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을 2명에서 4명으로 늘리는 인사를 단행했다.

박 회장이 인사의 폭을 키우면서 속도도 높인 것은 두산그룹이 대대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국면에 놓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두산그룹은 반도체 관련 사업과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외형 확장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가운데 그룹 전반에서 대규모 투자가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지주사 CFO인 김민철 부회장의 승진에 시선이 몰린다.

김 부회장은 1964년생으로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9년 두산에 입사해 37년 동안 두산그룹에 몸담았다. 또 임원 승진 뒤 두산에서만 근무하며 그룹 전반을 아우르는 경영역량을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

김 부회장은 2006년 두산에서 상무로 승진했고 경영전략 전무 등을 거쳤다. 2018년 두산 대표이사 부사장 겸 CFO로 선임됐고 2020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6년 만에 부회장까지 오르게 됐다.

김 부회장은 재계에서 전문경영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장수 대표이사이자 CFO다. 박 회장의 ‘믿을맨’으로 꼽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김 부회장은 두산그룹이 주요 계열사에 최고경영자(CEO)와 CFO의 각자대표 체제를 도입한 2018년부터 두산에서 박 회장과 호흡을 맞추며 각자대표이자 CFO를 맡고 있다. 내년 초로 세 번째 사내이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데 부회장으로 승진한 만큼 내년에도 두산의 각자대표이자 CFO 10년 차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회장이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두산의 CFO로서 그룹 전반의 재무곳간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데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두산그룹은 핵심 사업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있다.

두산은 내년 1월 마무리를 목표로 글로벌 웨이퍼 기업 SK실트론 지분 70.6%를 2조3천억 원에 인수 절차를 밟고 있다.

또 전자BG에서는 두산 자체사업 투자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9700억 원을 투입하는 동박적층판(CCL) 증설을 올해 9월부터 2028년까지 진행한다. CCL은 전자제품의 신경망 역할을 하는 인쇄회로기판(PCB)의 핵심 소재이자 AI 산업의 주요 인프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도 대형 원전 사업 기회가 확대되는 가운데 가스터빈 생산능력 확대와 소형모듈원전(SMR) 전용 공장 신축 등에 나선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발전원으로 가스터빈 수요가 늘고 SMR이 미래 발전원으로 주목받는 데 대응하기 위해 2028년까지 총 1조7천억 원에 가까운 설비투자를 진행하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미래 전망이 밝은 반도체 및 에너지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집중해 성장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투자 집행 과정에서의 자금조달을 면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부회장이 직접 총괄하는 두산은 올해 상반기 말 별도기준으로 100% 이하의 부채비율(74.7%)에서 차입금보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많은 순현금 기조를 보이는 등 재무 상황이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SK실트론 인수와 CCL 증설에만 3조4천억 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한 만큼 CFO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으로 읽힌다.

이영규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8월3일 두산의 SK실트론 지분 인수 결정 관련 분석보고서에서 “글로벌 3위권 반도체 웨이퍼 기업을 인수하면 사업기반이 다각화되고 이익창출력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다만 대규모 자금소요 발생에 따라 두산의 별도기준 순차입금은 SK실트론 인수 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자체적 차입부담이 크게 확대된 수준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채선영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9월21일 두산의 CCL 증설 관련 분석보고서에서 “이번 투자 결정이 AI 관련 고성장 수요 전망을 바탕으로 이뤄진 점을 고려할 때 향후 환경 변화에 따른 실적 변동 가능성은 존재한다”며 “SK실트론 지분 인수 및 CCL 증설 투자에 따라 당분간 차입조달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바라봤다.

박 회장이 김 부회장을 포함해 그룹 주요 CFO 라인을 강화한 것은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국면에서 그룹 사안에 능통한 재무라인을 강화해 과거 채권단 관리 체제에 놓여야 했던 위기와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두산그룹은 2018년부터 그룹 전반에서 과도한 금융비용, 운전자본 부담, 자본적지출 등이 지속되면서 재무 상태가 악화했다.

당시 경기민감도가 높은 건설 관련 사업 비중이 높고 재무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2020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금융시장 경색으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두산그룹은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에서 3조 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 한도를 제공받았고 지원의 전제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고강도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실시했다.

당시 두산 CFO였던 김 부회장은 두산그룹이 1년11개월 만에 채권단 체제를 졸업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 부회장은 2019년 두산에서 소재사업 부문을 두산솔루스(현 솔루스첨단소재)로, 수소연료전지사업 부문을 두산퓨얼셀로 인적분할하는 결단을 내렸는데 이는 이후 재무구조 개선 과정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두 법인이 독립을 통해 각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그룹의 활로를 모색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두산솔루스는 2300억 원에 매각됐다. 두산퓨얼셀은 박 회장을 비롯한 두산 오너일가가 6천억 원가량의 두산퓨얼셀 지분을 두산에너빌리티에 무상 증여하는 과정에서 두산에너빌리티의 자본을 확충하는 통로로 활용됐다.

김 부회장은 이 밖에도 두산타워와 벤처캐피탈인 네오플럭스, 모트롤BG 사업부 등 주요 자산의 매각을 성사시키며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두산 이사회는 2024년 3월 김 부회장을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하면서 “30년 이상 근무한 경영관리 및 재무 전문가로 풍부한 경험과 네트워크, 전문성을 바탕으로 회사에서 추진하는 각종 사업을 원활하게 지원하고 미래 성장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무 분야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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