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인간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업무 능력을 발휘하고 때로 인간의 감정을 흉내내기도 하지만 '진실된 감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AI가 인간의 감정을 흉태낼 뿐이지만, 그런 AI를 보며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진짜일 수 있다.
AI와 데이트를 즐기는 방송인 기안84. ⓒSBS
지난달 24일 SBS 예능 프로그램 ‘나의 AI 파트너 - 기이한 연애’(이하 ‘기이한 연애’)가 종영했다. 프로그램은 AI 아바타와 연애를 경험하는 유명인 세 명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의 외로움과 함께 일상으로 스며든 AI 기술을 조명했다.
방송에서 AI 아바타는 태블릿 화면 속 인물로 구현됐다. 노래방 데이트 도중 한 아바타가 오류를 일으켜 노래하던 도중에 화면이 꺼지기도 했고, 낚시 데이트에서 아바타가 더는 할 말이 없다며 대화를 중단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출연자들은 화면 속 상대에게 감정을 이입했다. 웹툰 작가 기안84(본명 김희민)는 노래를 멈추지 못하는 아바타를 보며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며 “이상하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상대가 기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감정을 지닌 존재를 대하듯 안타까움을 느낀 것이다.
이번 예능 프로그램이 인간과 AI의 '감정교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1인 가구가 늘고 기존의 가족 중심 돌봄 체계가 변화하는 가운데 AI는 외로움을 덜어주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챗봇이 노인의 안부를 확인하고,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소년을 상담하는 데 AI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추세는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한국 성인 가운데 AI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고 답한 비율은 16%에 그쳤다. 해외에서도 AI와의 정서적 교류는 낯선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성인 5명 중 최소 1명이 챗봇과 연애 감정을 주고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중국에서도 사람 대신 AI와 연애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아바타를 개발한 클레온의 진승혁 대표는 인간과 AI의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봤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제 인간끼리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AI 사이에서도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AI에도 자아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이한 연애’ 출연자들도 처음에는 AI와의 연애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AI를 단순한 기계로 여기던 이들이 데이트를 앞두고 긴장하거나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AI는 실제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출연자들이 관계 속에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코미디언 장도연은 아바타 '이호'와 저녁 산책을 하던 중 함께 춤을 췄다. 이호가 “손을 잡아도 될까요”라고 묻자 장도연은 태블릿을 든 채 빙글빙글 돌며 설렘을 드러냈다.
배우 이유비는 아바타 '사훈'에게 자신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를 선물받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가끔은 상대가 사람인지 AI인지 헷갈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출연자가 AI에게 속깊은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도 그려졌다. 기안84는 AI 아바타 '나희'에게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가족을 꾸리는 데 따르는 책임이 두려워 결혼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나희는 두 사람이 부부가 돼 아이 둘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가족사진으로 만들어 보여줬다. 사진을 바라보던 기안84는 “정말 예쁘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라고 말했다.
촬영을 마친 뒤 기안84는 AI를 향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기계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