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삼성전자 주가가 하루 만에 9.48% 급락해 21만 원으로 내려앉은 가운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주가가 더 떨어지기를 바란다는 삼성전자 직원 명의의 글들이 올라왔다. 내년에 받을 특별경영성과급을 주식으로 지급받을 때 주가가 낮을수록 더 많은 주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본 주주들은 분노했다. 일부 직원들은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 자신에게는 이득이라며 주주들을 조롱했고, 주주들 역시 노동자들의 성과급을 문제 삼으며 맞받아쳤다. 삼성전자 성과급을 둘러싼 주주와 노동자의 갈등이 서로의 손실을 비웃고 보상을 시기하는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전투구에서 정작 눈여겨봐야 할 것은 누가 누구에게 더 심한 말을 했느냐가 아니다. 그 이면에서 너무나 당연한 원칙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주가치'의 신성성이다.
여명구 삼성전자 DS피플팀장(가장 왼쪽)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가장 오른쪽)이 5월20일 경기 수원시 고용노동청에서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다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삼성전자 노사가 반도체 부문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특별경영성과급을 지급하기로 잠정 합의하자, 일부 주주단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해당 합의가 노사가 결정할 근로조건의 범위를 벗어나며 주주총회 결의가 없다면 무효라고 주장했고, 소송까지 예고했다. 성과급 규모가 지나치게 많은지 따져 묻는 것을 넘어 노사가 체결한 합의의 효력 자체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물론 주주단체의 주장을 단순히 성과급을 지급하기 싫어서 벌이는 억지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이들은 성과급의 규모뿐 아니라 이익 배분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과 절차의 적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실제로 이번 성과급은 자사주로 지급되는 만큼 관련 주주총회 승인 절차도 예정돼 있다. 주주단체가 제기한 합의의 위법성 역시 별도로 따져봐야 할 법률적 쟁점이다.
그러나 이 논쟁에는 법률적 판단과 별개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주주가 노사합의의 적법성을 따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 노동자의 보상을 판단할 때에도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주주는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이익이 어떻게 쓰이는지 따져 물을 권리가 있다. 경영진이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훼손할 만큼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보상을 지급한다면 이에 대해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권리가 노동자의 보상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을 주주의 이익에 종속시킬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이 둘의 구분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주주가치는 오랫동안 개혁의 언어였다. 오너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거대한 기업집단을 지배하면서 계열사 간 부당한 거래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의사결정으로 일반주주의 이익을 훼손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주주가치 제고는 단순히 투자자의 수익을 늘리자는 요구가 아니었다. 기업의 이익을 오너일가가 사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투자자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배구조 개혁의 문제였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상법 개정이 개혁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주주행동주의가 기업 경영을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평가받게 된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문제는 오너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강조해 온 주주가치가 이제는 기업이 추구해야 할 최상위의 가치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에서 노동자의 처우를 둘러싼 갈등은 주로 오너나 경영진과 노동자 사이의 문제로 인식돼 왔다. 노동자는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고, 경영진은 비용을 통제하려 했다. 반면 소액주주들은 기업의 이익을 독점하려는 오너일가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기업이 창출한 성과를 나누는 문제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기업 회계에서 노동자의 임금과 성과급은 비용이다. 비용이 늘어나면 기업의 이익은 줄어들고, 다른 조건이 같다면 주주에게 돌아갈 수 있는 몫도 줄어든다. 이것은 회계적으로 당연한 이야기다. 지배주주와 소액주주가 대립하는 기업 지배구조 문제와 달리, 노동자의 보상을 둘러싼 문제에서는 양쪽이 같은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용을 줄이는 것이 언제나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결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비도 비용이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지급하는 높은 임금도 비용이다. 이를 줄이면 당장의 이익은 늘어날 수 있지만, 그 결과 기업이 장기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가치는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노동자의 성과급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적절한 보상인지,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투자 여력을 훼손하는 지나친 분배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먼저다. 단순히 주주에게 돌아갈 수 있는 이익을 줄인다는 사실만으로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기업이 창출하는 성과는 자본, 노동, 어느 하나만의 산물이 아니다. 공장을 지을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안에서 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할 사람이 없다면 기업은 돈을 벌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뛰어난 기술자라도 막대한 설비투자가 없다면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 어렵다.
자본과 노동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업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그 성과를 배분할 때 유독 주주의 이익만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주주가치 운동이 오너일가의 전횡에 맞서 요구했던 것 역시 다른 이해관계자보다 더 많은 권리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침해당했던 주주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사실이 다른 누군가의 권리보다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오너일가가 기업을 자신의 사유재산처럼 여기는 것이 잘못이라면, 주주 역시 자신이 가진 주식이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몫까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너일가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이유로 일반주주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투쟁해서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다음 단계의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오너일가의 이익을 위해 주주의 권리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면, 주주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것은 왜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