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언가를 미워하기가 참 쉬워졌다. 누군가가 한 말을 몇 초짜리 영상으로 보고, 댓글 몇 개를 읽으면 금세 결론이 난다.
'저 사람은 이상하다.' '역시 저런 사람들은 다 똑같다.'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멸종'되고, 그야말로 '대혐오의 시대'가 온 걸까.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한 시민이 책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 역시 다르지 않다. 영상을 보다가 금세 화가 나고, 댓글을 읽으며 내 생각이 맞다고 확신한다. 그러다 가끔 찜찜해진다. 나는 방금 무엇을, 얼마나 알고 이렇게 확신한 걸까. 언제부터 사람과 세상을 이렇게 빨리 판단하게 된 걸까.
"대충 알고 좋아하고, 다 알고 싫어하자."
김민경 민음사 해외문학 편집자는 유튜브 콘텐츠 ‘비(B)주류초대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오래 남은 건 '싫어하자'보다 '다 알고'라는 대목이었다.
누군가를 다 안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적어도 한 사람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책을 떠올렸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책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3월 발표한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다. 2023년보다 4.5%포인트 낮아졌다. 이제 성인 10명 중 6명 이상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거나 듣지 않는다.
물론 독서율이 낮아졌기 때문에 사회의 혐오가 커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반드시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선선한 날씨를 보인 9일 서울 양재천에 한 시민이 독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도 자꾸 책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책을 읽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처음에는 정말 싫은 사람이 등장할 때가 있다. 하는 말마다 마음에 들지 않고, 도대체 왜 저렇게 사나 싶다.
그런데 100쪽쯤 지나면 그의 어린 시절이 나온다. 200쪽쯤 가면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떤 선택들을 지나 지금의 사람이 되었는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조금 곤란해진다. 여전히 그 사람이 한 행동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처음처럼 쉽게 미워하기는 어려워진다. 그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아진다.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이런 불편한 순간을 만난다.
책을 읽는 동안 실제로 우리의 판단은 달라질까. 2013년 토론토대학교 마야 지키치 연구팀은 소설 읽기와 '인지적 완결 욕구'의 관계를 살펴봤다. 인지적 완결 욕구란 불확실한 상태에 머무르기보다 어떻게든 빠르게 하나의 답을 얻고 싶어 하는 성향을 말한다. 연구 결과, 비소설 에세이를 읽은 사람들보다 단편소설을 읽은 사람들에게서 이 욕구가 더 낮게 나타났다.
물론 소설 몇 권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타인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결과가 흥미로운 건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이라기보다, 내 판단을 잠시 미뤄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9월29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오픈AI 데브데이 2026' 행사에 참석자들이 모여 있다. ⓒAP/연합뉴스
우리는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정보와 답에 도달한다. 궁금한 것은 검색하면 나오고, 긴 글은 요약할 수 있으며, 몇 초짜리 영상 하나로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접한다.
문제는 답에 도달하는 속도만큼 판단의 속도까지 빨라진다는 점이다. 정보를 만나는 시간은 늘었는데, 정작 그 정보를 붙잡고 생각하고 망설이는 시간은 줄어든다.
인지학자 메리언 울프는 속도와 즉각성을 강조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습관화되는 '빠른 훑어읽기'가 비판적 분석과 공감, 성찰처럼 충분한 시간과 주의를 필요로 하는 '깊이 읽기' 과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타인의 삶을 헤아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내가 모르는 맥락은 없는지 살펴보려면 멈춰 서야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더 빠른 반응을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가장 빠른 판단인 '미움'으로 곧장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미움받을 용기'만큼이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쉽게 미워하지 않을 용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은 조금 다르다. 좀처럼 빠른 결론을 허락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미웠던 사람에게도 다음 페이지가 있고, 이해할 수 없었던 선택에도 그 앞의 이야기가 있다. 한 페이지를 넘기면 내가 몰랐던 사정이 나오고, 또 한 페이지를 넘기면 내가 내린 판단이 조금 흔들린다.
책은 읽는 사람에게 자꾸만 말하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읽어보라고. 아직 다 모른다고.
흔히 '회색지대'라고 하면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채 어정쩡하게 가운데 서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회색지대는 조금 다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할 수 있는 것. 누군가에게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볼 수 있는 것.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는 것. 그런 공간이다. 흑과 백으로 나뉜 세상에서 너무 빨리 어느 한쪽의 색으로 칠해버리지 않기 위해 남겨두는 작은 여백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더 많은 판단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모르는 게 있다고, 조금 더 읽어보기 전까지는 결론을 미뤄두게 하는 망설임. 누군가를 완전히 미워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도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하는 기다림. 쉽게 답을 내리는 대신 한 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하는 인내심.
흑과 백 사이에서 그렇게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우리는 어쩌면 미움 말고 다른 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책을 덮지 말고 마지막 장까지 가보자. 우리에게는 아직 읽지 않은 몇 페이지가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