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9조 원 투자가 새만금 개발 사업의 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정부는 새만금 매립 완료 목표를 15년 앞당기는 기본계획 변경안을 내놓으며 현대차그룹 투자를 중심으로 새만금 개발의 판을 다시 짜고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는 투자 발표 7개월 만에 건축심의에 들어갔다. SK그룹의 새만금 데이터센터가 6년 가까이 첫 삽을 뜨지 못했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정부가 뚜렷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전력 확보 계획은 아직 구체화가 더디다. AI 데이터센터(AIDC)의 전력 소모량이 큰 만큼 24시간 끊이지 않는 전원을 확보하는 일이 남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9조 원 투자가 새만금 개발 사업의 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사진은 정 회장(오른쪽)이 2월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AI 시티 투자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이재명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9월28일 새만금개발청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새만금 투자가 인허가 단계에 들어서면서 새만금 개발이 현대차 투자를 중심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만금청은 9월22일 새만금 1산단 7공구에 들어설 현대차그룹 AIDC의 건축심의에 착수했다. 현대차그룹이 2월27일 정의선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약 9조 원의 새만금 투자협약을 맺은 지 7개월 만이다.
AIDC는 전체 투자 금액 9조 원 가운데 5조8천억 원을 차지하는 핵심 사업이다. 현대차는 2029년부터 100MW(메가와트)급으로 가동할 계획을 세웠고, 새만금청은 올해까지 건축허가를 마치고 2027년 3월 착공을 뒷받침할 방침이다.
새만금 개발계획은 현대차 투자를 중심으로 다시 짜였다. 새만금청은 8월20일 매립 목표를 2050년 240.5㎢에서 2035년 169.6㎢로 조정하고, 민간 투자유치 중심이던 개발 방식을 공공주도로 바꾸는 기본계획 변경안을 내놨다. 매립 면적을 30%가량 줄이는 대신 완료 시점을 15년 앞당긴 것이다.
산업용지는 12.1㎢에서 37.5㎢로 늘리고, 현대차 AIDC와 로봇 공장이 들어설 1산단을 로봇·AI 거점으로 정했다. 수요 없이 계획부터 세우던 과거와 달리 기업 수요를 받아 산업용지를 계획했다는 게 새만금청의 설명이다.
정부의 지원 의지도 확고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12월 새만금청 업무보고에서 "일종의 희망 고문"이라며 새만금 사업의 더딘 속도를 질타했다. 이후 3월부터는 국무총리가 직접 범정부 태스크포스(TF)인 '새만금·전북 대혁신 TF'를 이끌었다.
김민석 당시 국무총리는 5월19일 새만금에서 관계부처와 전북도, 현대차가 참석한 TF 회의를 열고 부지·재정·세제·규제·연구개발·인력·정주·인프라 8개 분야의 종합지원계획을 내놨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국무총리실이 '새만금ㆍ전북 대혁신 TF'를 주재한다고 해서 새만금 사업을 추진할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새만금 사업에 워낙 수많은 부처가 관계돼 있다 보니 이들에게 하나의 목표를 지속적으로 환기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질적 권한과 별개로 정부가 새만금 사업을 위한 TF를 꾸린 것 자체가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처별 약속도 하나둘 실행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5월 AI 도시 특례 등 20여 개 지원 과제를 정리했고, 9월 새만금을 'AI 특화 시범도시' 조성 대상에 포함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9월 전북을 피지컬AI 소프트웨어 플랫폼 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했다.
새만금청은 3월 현대차 프로젝트 전담 '새만금 로봇수소추진본부'를 꾸렸고, 2027년도 예산안에서 기업투자 지원 예산을 46억 원에서 265억 원으로 늘렸다.
과거의 새만금 투자는 이런 속도를 내지 못했다. SK그룹은 2020년 11월 2조1천억 원을 들여 데이터센터와 창업클러스터를 짓는 투자협약을 맺었지만, 데이터센터는 6년 가까이 첫 삽을 뜨지 못했다.
SK는 데이터센터를 짓는 대가로 수상태양광 200MW(메가와트) 발전사업권을 받았다. 그 태양광이 송·변전설비 비용 문제로 멈추자 데이터센터 사업도 같이 표류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새만금 투자는 수상태양광 200MW 발전사업권을 얻는 조건으로 데이터센터 계약을 맺었던 것"이라며 "태양광 사업이 계류되면서 데이터센터 투자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발전사업권을 얻으려는 투자가 아니라 자율주행 데이터 학습이라는 그룹 내부 수요에서 출발했다.
다만 SK를 멈춰 세운 전력 문제는 현대차에도 숙제로 남아 있다. 정부 약속 가운데 가장 더딘 분야도 전력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월 협약에서 안정적 전력 공급 방안 마련을 약속했으나 구체적 계획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
이와 별도로 현대차는 자체 조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1조3천억 원을 들여 2035년까지 GW(기가와트)급 태양광을 단계적으로 확보해 AIDC와 수전해 플랜트의 핵심 전력원으로 쓰는 방안이다. 수전해 플랜트에서 만든 청정수소를 AIDC 운영에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사업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단계라 전력 계통 문제를 벌써 확정하는 것은 어렵다"며 "단계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