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이미 파손된 건물이었다. 그런데도 이곳에는 110명이 넘는 주민이 살고 있었다.
건물은 끝내 무너졌고 주민들을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민방위대원들이 16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에서 무너진 주거용 건물 잔해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각) 새벽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가자시티에서 7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졌다. 17일 진행된 구조 작업에서 45명이 잔해 속에서 구조됐지만 21명은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 가운데 8명은 어린이였다.
아파트 건물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항상 붕괴의 위험을 놓여있었다. 붕괴 위험에도 건물에는 100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다른 거처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가자 민방위 당국을 인용해 현재 수만 명이 공습으로 파손된 건물 약 2천 채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 무너진 건물에서 살아남은 나데르 엘에즐라는 "가족과 함께 머물 곳을 찾아다녔지만 다른 피란처를 구하지 못해 결국 이 건물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가자 당국이 건물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주민 상당수는 떠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도 16일 가자 주민들이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은 건물에 머물거나 천막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
17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서 피란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크게 파손된 건물 안에 거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가자지구에서 안전한 집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은 유엔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유엔 위성센터(UNOSAT)가 지난 6월16일 기준 위성영상을 분석한 결과 가자지구 전체 건축물의 약 82%인 20만1290채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3만4422채는 파괴됐고 1만3848채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평가됐다.
폭격이 남긴 잔해의 규모도 막대하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지난해 11월 가자지구의 파괴로 약 6100만 톤의 잔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UNDP는 중장비와 연료 반입, 작업 지역에 대한 접근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조건에서 건물 잔해를 제거하는 데 7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7월에도 UNDP는 가자지구의 잔해 규모를 6100만 톤 이상으로 제시했다.
17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크게 파손된 건물 주변에 피란민들이 머무는 천막과 시장이 들어서 있다. ⓒAP/연합뉴스
그렇다고 공습 피해를 입은 집을 떠나면 안전한 거처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가 지난 5월 공개한 자료를 보면, 가자지구 전역 약 1600곳의 피란지에 약 170만명이 머물고 있었다. 이 가운데 약 88%는 임시 피란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9월4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머무는 텐트촌이 들어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피란지의 생활 여건도 열악하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9월4일자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 주민 대부분이 우기를 앞두고 과밀한 피란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OCHA가 약 230곳을 점검한 결과 이곳에만 최소 18만7462명이 머물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안전하지 않은 화장실과 오물 구덩이, 오폐수, 배수 불량, 과밀과 화재 위험 등이 확인됐다. OCHA는 우기를 앞두고 과밀한 피란지의 주민들이 침수와 질병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경고했다.
파괴된 주택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작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휴전 이후에도 가자지구 재건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건축자재와 중장비 등의 반입 제한이 복구를 가로막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등 무장세력이 물자와 장비를 군사적으로 전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마스 무장해제와 이스라엘군 철수 등을 둘러싼 협상이 교착된 점도 재건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17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서 피란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크게 파손된 건물 안에 머물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에 따라 일부 주민들은 공습 피해를 입었지만 벽과 지붕이 남아 있는 건물로 다시 들어가 생활하고 있다. 안전한 주거 공간이 부족해 붕괴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휴전 이후에도 공습 위험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휴전으로 대규모 전투는 줄었지만 이스라엘군의 공습과 포격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건물 붕괴는 가자 주민들이 처한 주거 위기를 보여준다. 공습으로 파손된 건물에 남으면 붕괴 위험에 노출되고, 집을 떠나면 과밀하고 기반시설이 부족한 피란지에서 생활해야 한다. 파괴된 주택의 재건마저 지연되면서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거처가 태부족한 상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