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의 첫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제품명 에페)의 국내 출시가 임박했다. 한미약품은 연내 상용화를 목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절차와 생산·유통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4월에는 개발부터 임상, 마케팅, 생산, 유통을 아우르는 전사 협의체(에페-프로젝트-서사(EFPE-PROJECT-敍事))까지 출범시키며 출시 준비에 속도를 냈다. 9월에는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QA(품질) 분야에 인공지능(AI)를 전면 도입하는 AI 솔루션 도입 및 실증 작업에도 돌입했다. 회사는 이 솔루션을 이곳에서 본격 생산을 앞둔 에페의 품질보증 업무에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회사 황상연 대표이사의 당면 과제는 에페를 얼마에 공급해 어느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가격을 낮춰 환자 접근성을 높이면 후발주자로서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 수 있지만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가격을 높이면 매출 목표 달성에 필요한 처방건수는 줄어들지만 위고비·마운자로 대비 가격 경쟁력이 약해지고 점유율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
황상연 한미약품 대표이사 사장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가격이 시장점유율 결정한다
17일 제약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한미약품의 국내 제1호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가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한미약품이 애초 목표로 했던 연내 출시도 가능하게 된다.
에페의 출시가 가시화하면서 한미약품의 다음 고민은 가격으로 좁혀지고 있다. 한미약품은 에페를 연간 국내 매출 1천억 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품목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해 왔다.
현재 국내 비만치료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품목이어서 환자가 약값을 전액 부담한다. 서울 시내 약국 기준으로 1개월분 가격을 보면, 위고비는 용량별로 월 20~40만 원대에, 마운자로는 월 30~70만 원대에 형성돼 있다.
한미약품은 아직 공급가격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최근 업계에서는 에페의 공급가격이 10만 원대에서 책정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황상연 대표 체제 하에서 이뤄지는 첫 주요 제품 상업화인 만큼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춰 환자 저변을 확대하는 방향에 무게가 실린다. 국내 생산을 기반으로 물류·유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은 이 같은 판단의 근거가 된다.
가격은 시장점유율과 직결된다.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이 7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의약품안전서비스(DUR) 자료에 따르면, 마운자로는 출시(2025년 8월) 후 2026년 5월까지 10개월간 150만 건, 위고비는 출시(2024년 10월) 후 같은 시점까지 123만 건이 처방됐다. 이를 근거로 최근 두 제품의 월평균 처방 건수를 어림잡으면 21만 건(연 252만 건)으로 추산된다.
에페가 연매출 1천억 원을 달성하려면, 처방 1건당 매출액이 10만 원일 경우 연간 100만 건, 15만 원일 경우 67만 건, 20만 원일 경우 50만 건의 처방이 필요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토대로 단순 계산하면, 현재 시장 규모가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에페가 위고비·마운자로가 점유한 시장의 40%, 27%, 20%를 가져와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한미약품은 적절한 시장점유율 목표와 공급가격의 황금분할비율을 놓고 출시 직전까지 고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약품이 내세우는 핵심 차별화 포인트는 국내 생산 기반이다. 위고비·마운자로가 해외에서 완제품을 수입하는 것과 달리 에페는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직접 생산하므로 공급 안정성과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평택 바이오플랜트는 cGMP 기준의 생산·품질 시스템을 갖췄으며, 완제의약품 기준 연간 약 3천만 개의 프리필드시린지(사전충전형주사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황상연 대표는 환자 접근성을 높일 만큼 가격을 낮춰 위고비·마운자로가 형성한 시장에서 충분한 처방을 가져오면서도 동시에 매출과 수익성을 확보하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어떤 약물?
에페는 한미약품이 독자 개발한 GLP-1 수용체 단일 작용제 계열 비만치료제로, 위고비·마운자로와 마찬가지로 주 1회 투여 방식이다. 자체 약효지속형 플랫폼 ‘랩스커버리’가 적용됐다.
한미약품이 2025년 10월 공개한 국내 3상 중간 톱라인 결과(한국인 448명 대상)에 따르면, 최대 30%의 체중감소 효과와 평균 9.75%의 체중감소율, 기존 GLP-1 제제 대비 양호한 안전성이 확인됐다. 위약군 감소율(0.95%)과 비교하면 뚜렷한 효과다.
한미약품은 2025년 12월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고 곧이어 식약처의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대상으로 지정됐다. 업계에서는 10월 출시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적응증을 당뇨병으로 확장하기 위한 임상도 진행 중이다. 1월 식약처로부터 임상 3상을 승인받고 4월 투약을 시작했다. 2028년 임상을 마친다는 계획을 세웠다.
◆ HOP 프로젝트의 후속 파이프라인
에페는 한미약품의 비만·대사질환 파이프라인 계획 ‘HOP(Hanmi Obesity Pipeline)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산물로, 국내 제약사의 독자기술로 개발한 첫 번째 비만치료제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HOP 프로젝트는 △에페글레나타이드 △삼중작용제(HM15275) △근육증가형 비만치료제(HM17321·HM500197) △경구용 비만치료제 △디지털 치료제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HM15275는 미국 임상 2상, HM17321은 미국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M17321은 8월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계열사인 제넨텍에 최대 23억 달러(약 3조1892억 원) 규모로 기술수출되기도 했다. HM500197은 전임상을 마치고 임상 1상 진입을 준비 중인 단계다.
에페가 시장 안착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이 약에서 나온 수익을 후속 파이프라인 R&D에 재투자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려는 한미약품의 계획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후속 파이프라인들이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최종 임상 성공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에서, 에페의 초기 시장 안착 여부가 한미약품 비만약 사업 전체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