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 자꾸 바뀌면 경영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 장기적 투자자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금융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15년 10월, 우리은행 매각에 '과점주주 방식'을 도입하며 내놓은 설명이다. 지분을 쪼개 파는 과점주주 방식을 성공시키고 정부 간섭 없는 자율경영을 완성하기 위한 핵심 전제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이듬해인 2016년 우리은행은 이 방식으로 1차 민영화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흐른 뒤, 임 회장은 이번에는 자신이 설계한 과점주주체제가 해체되어 가는 국면에 서 있다. 유진프라이빗에쿼티(유진PE)가 우리금융지주 지분 절반가량을 처분해 보유 지분율이 2%대로 내려가면서, 우리금융지주가 내년 독립이사 선임에서 유진PE의 추천권을 회수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구조가 해체되고 있는 자리에서, 임 회장은 과점주주체제의 공백을 메우면서 이사회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새로운 지배구조 측면의 과제를 떠안게 됐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2016년 우리은행 민영화 당시 금융위원장으로서 과점주주체제를 설계했던 인물이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유진PE의 과점주주 이탈, 이사회 지형도 바꾼다
14일 우리금융지주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독립이사 7명 가운데 5명의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된다. 이 5명에는 과점주주 추천 이사 4명, 윤인섭(푸본생명)·김춘수(유진PE)·김영훈(키움증권)·이강행(한국투자증권) 이사가 모두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유진PE 추천 김춘수 이사는 중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유진PE가 2일 우리금융 주식 1400만 주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로 처분하면서 보유 지분율이 2.06%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유진PE는 2021년 우리금융지주 완전민영화 당시 예금보험공사 지분 4%를 인수하며 사외이사 1명 추천권을 함께 확보했는데, 금융권에서는 이번 매각으로 추천권이 회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이사는 보험감독원과 보험사를 거쳐 유진기업 윤리경영실 초대 실장을 지냈고, 2025년 3월 선임돼 현재 감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 이사회 독립성 장치였던 과점주주체제 해체, 우리금융지주 '주주통제 강화' 눈에 띄는 이유
우리금융지주의 과점주주체제는 여러 주요 주주가 각각 추천한 독립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면서 특정 주주나 경영진에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견제하는 구조로 작동해 왔다.
이강행 우리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말 임종룡 회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발표하면서 "우리금융 이사회는 과반수가 과점주주 체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 이사가 의견을 주도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강행 위원장의 설명대로라면 실제로 과점주주체제는 이사회에서 특정 이사가 의견을 주도하기 어렵게 만드는 하나의 견제 장치로 기능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유진PE가 과점주주에서 이탈하면 이 '과반' 구도가 무너진다. 내년 주주총회에서 우리금융지주가 김춘수 이사의 빈자리를 회사 추천 이사로 채우면 과점주주 추천 독립이사는 7명 중 3명, 빈자리를 채우지 않더라도 6명 중 3명으로 정확히 절반이 된다. 어느 쪽이든 그동안 이사회 독립성을 뒷받침해 온 과점주주의 '과반' 구도는 사라진다.
금융당국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과 이사회 투명성에 대한 감시가 어느 때보다 매서운 상황에서, 과점주주체제를 대신해 이사회 독립성을 확보할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임 회장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우리금융지주가 주주총회 단위의 경영진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리금융지주는 올해 3월 23일 주총에서 정관을 개정해 대표이사 선임 시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도록 하고, 2회 이상 연임(3연속 선임) 시에는 특별결의 절차를 도입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정관 개정 취지를 대표이사 선임과 장기 재임에 대한 주주 통제권 강화, 경영승계 절차 등 지배구조 개선으로 설명했다. 같은 주총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감사위원 분리 선임, 전자주주총회 도입 등 개정 상법과 관련한 주주 통제 장치들도 반영했다.
다만 이러한 통제 강화가 주주총회 차원의 이야기들인 만큼, 이사회 자체의 독립성을 강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금융권에서는 과점주주 추천 이사가 줄어드는 만큼, 독립이사 선임과 승계 절차의 투명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핵심 논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년 3월 주총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5명의 후임을 누가 어떤 절차로 추천하는지가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반기보고서 기준 우리금융지주의 5% 이상 주주는 우리사주조합(8.51%), 블랙록(7.18%), 국민연금(6.43%)이다. 우리금융의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 4일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남은 과점주주는 푸본생명·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이다. 특히 키움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2016년 취득 후 약 10년간 지분을 보유해왔다.
◆ 2016년 임종룡이 만든 방식, 2026년 해체 국면에도 임종룡이 서 있다
유진PE의 과점주주 이탈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것은 임종룡 회장의 이력이다.
우리은행 민영화는 2010년 이후 경영권을 통째로 넘기는 방식이 유효경쟁 불성립으로 무산되며 네 차례 실패했다.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은 2015년부터 지분을 여러 투자자에게 쪼개 파는 과점주주 방식을 추진했다. 그는 그해 10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은행 경영에 도움이 되는 주주를 찾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경영의 자율성 측면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등의 발언을 하며 과점주주체제 도입 의지를 보였다.
이후 2016년 8월22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제125차 회의에서 과점주주 매각방안이 의결됐고, 같은 해 11월13일 금융위원회는 과점주주 7개 회사를 유치해 민영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4% 이상 지분 투자자에게 사외이사(현 독립이사) 추천권을 부여하는 구조였으며, 임 위원장은 이와 함께 정부 지분이 10% 아래로 내려가면 비상임이사를 선임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2021년 잔여지분 매각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됐다. 정부는 유진PE 4%, KTB자산운용 2.3%, 얼라인파트너스 1%, 두나무 1%, 우리사주조합 1% 등 총 9.3%를 매각하면서 공적자금 약 8977억 원을 회수했고, 누적 회수율은 96.6%를 기록했다. 최대주주도 2021년 12월 9일 예금보험공사에서 우리사주조합으로 바뀌었다.
다만 이후 이사회에서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의 의석은 하나씩 줄어가기 시작했다. 동양생명 추천 전지평 이사는 지분 매각을 계기로 2021년 8월 중도 퇴임했고, 2022년 한화생명의 우리금융지주 지분 블록딜 이후 이듬해 주주총회에서 한화생명 추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빠졌다.
2016년 우리금융지주 지분 6%를 인수했던 IMM PE는 2024년 3월부터 지분을 정리하기 시작해 2025년 1월 잔여 지분을 전량 처분하면서 추천권이 회수됐다. 이후 IMM PE의 추천 이사였던 지성배 이사의 임기는 2025년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장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