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분을 돌보며 고인을 기억해온 전통이 이어지는 가운데, 떠나보내고 추모하는 방식은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서울시립승화원의 어린이산분장 '나비 쉼터'의 모습. ⓒ서울시립승화원 홈페이지
그중 하나가 화장한 유골을 바다나 정해진 장소에 뿌리는 ‘산분장(散粉葬)’이다. 묘를 남기는 대신 고인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새로운 장례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산분장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면서 정부도 이용 확대에 나섰다. 정부가 2025년 1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산분이 가능한 구체적인 장소와 방법을 정했고, 같은 달 24일부터 시행됐다.
올해 4월부터는 시신·유골 화장 신고서의 ‘화장 후 장사방법’ 항목에서도 산분장을 별도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자연장을 수목장 등 기존 방식과 시설산분장, 해양산분장으로 구분해 신고하도록 서식이 개정됐다.
산분장은 화장한 유골을 분쇄해 골분을 일정한 장소(산분시설)에 뿌려 장사를 지내는 방식이다. 묘지를 만들어 봉분을 관리하거나 화장한 유골을 봉안당에 계속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산이나 바다 아무 곳에서나 유골을 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에서는 육지의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떨어진 해양에서만 산분할 수 있다. 환경관리해역과 해양보호구역 등 법령으로 보호되는 일부 해역에서는 제한된다.
산분 방법에도 규칙이 있다. 유골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수면 가까이에서 뿌려야 한다. 바다에 함께 뿌릴 수 있는 것도 화장한 유골을 잘게 부순 가루와 조화가 아닌 꽃으로 제한된다. 유품이나 장식물 등을 함께 바다에 던져서는 안 된다. 다른 선박의 운항이나 어업, 수산물 양식에 방해가 돼서도 안 된다.
육지에서는 더 제한적이다. 아무 산에 올라 유골을 뿌리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산분을 위한 장소나 시설을 별도로 마련한 장사시설에서만 가능하다.
결국 산분장 제도화는 ‘유골을 어디서든 자유롭게 뿌릴 수 있게 됐다’는 의미라기보다 그동안 제도 밖에 있던 장례 방식에 합법적인 길을 열어준 데 가깝다.
정부가 산분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장례문화가 빠르게 ‘화장’ 중심으로 바뀌었음에도 화장 이후에 많은 유골이 봉안시설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이 보편화되면서 봉분을 짓는 매장 묘지에 대한 부담은 줄었지만, 또 다른 공간 문제가 생겼다. 화장한 유골을 봉안당 등에 안치하려면 결국 장기간 보관할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례문화의 변화는 최근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통계청의 ‘2025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국민이 선호하는 장례 방식은 화장 후 봉안시설 안치가 36.5%로 가장 많았고, 자연장이 32.2%로 뒤를 이었다. 화장한 유골을 산이나 강, 바다에 뿌리는 산분장을 선호한다는 응답도 23.8%에 달했다.
9월4일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묘원에서 부산시설공단 관계자들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묘지 주변 벌초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묘지에 매장하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6.8%에 그쳤다. 2015년 12.6%였던 매장 선호도는 10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 봉분을 만들고 후손이 묘를 관리하던 전통적인 장례 방식에 대한 선호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도 이런 장례문화 변화에 맞춰 산분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제3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2023~2027)’에서 산분장 이용률을 2027년 3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장사시설 부족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산분장에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제도는 마련됐지만 현재 정작 유족이 이용할 수 있는 공설 산분장 시설이 충분하지 않다.
정부가 사업비의 70%를 국비로 지원하며 지자체의 공설 산분장 조성을 독려하고 있지만, 올해 2월 기준 지원 사업에 참여한 지자체는 서울·청주·무주 3곳에 그쳤다.
산분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설 확충과 함께 유족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골을 자연으로 돌려보낸 뒤에도 유족이 다시 찾아 고인을 기억할 수 있도록 별도의 추모 공간을 조성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5월 경기 파주시 용미리 제1묘지 ‘추모의 숲’에 문을 연 ‘나비쉼터’가 대표적이다. 행정구역상 파주에 있지만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립 장사시설이다.
전국 최초 어린이 전용 산분장지로 약 500㎡ 규모다. 만 12세 이하 어린이와 사산아의 화장한 유골을 산분할 수 있다.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지난 5월 시범운영을 시작한 뒤 8월 말까지 15건의 산분이 이뤄졌다.
이용료는 무료다. 서울·고양·파주 거주자뿐 아니라 다른 지역 거주자라도 서울시립승화원이나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경우 이용할 수 있다.
유골을 뿌리는 공간만 마련한 것도 아니다. 산분 구역과 추모 공간을 나눠 조성하고 정원과 기념 조형물, 무장애 데크형 접근로 등을 갖췄다. 아이를 기리기 위한 인형이나 장난감을 보관할 수 있는 ‘나비선물함’과 추모 글을 남길 수 있는 ‘나비 이야기’도 마련했다.
‘나비쉼터’라는 이름에는 짧은 생을 마친 아이들이 하늘에서는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유골은 자연으로 돌려보내면서도 남은 가족이 다시 찾아와 아이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봉분을 찾아 풀을 베고 절을 올리는 성묘에서, 숲과 정원 또는 바다를 찾아 고인을 기억하는 추모까지, 장사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고인을 떠나보내고 기억하는 방식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