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사장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경쟁의 승부처를 '크기'가 아닌 '속도'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센터를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방식의 표준을 건설사들과 함께 개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통신 3사 가운데 LG유플러스가 내놓은 AI 데이터센터(AIDC) 용량 계획은 가장 작고, 재원 조달 방식도 자체 현금흐름 중심으로 가장 보수적이다. 기가와트(GW) 단위를 앞세운 경쟁사들과 규모로 맞붙기는 쉽지 않은 구도다. 홍 사장이 '얼마나 크게 짓느냐' 대신 '얼마나 빨리 짓느냐'로 초점을 옮긴 배경이다.
다만 속도가 곧바로 무기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모듈러 데이터센터는 아직 건축법상 지위가 정리되지 않아 인허가에서 기존 건축물과 같은 절차를 밟을 수 있고, 공사비 부담이라는 과제도 남아 있다.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사장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경쟁의 승부처를 '크기'가 아닌 '속도'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홍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9월4일 허윤홍 GS건설 대표이사 사장(왼쪽 첫 번째)과 LG유플러스 평촌메가센터를 둘러보는 모습. ⓒLG유플러스
9월10일 정보통신기술(ICT) 및 건설업계에 따르면 통신사들의 AI 데이터센터 경쟁에서 GW급 규모 전쟁이 부각되는 가운데,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사장은 크기보다 '구축 속도'에서 차별성을 가져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통신사들이 발표한 AI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놓고 보면 LG유플러스는 규모 면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SK텔레콤은 2035년까지 15GW, KT는 5년간 5조 원을 투입해 1GW 용량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내세웠다. 반면 LG유플러스가 밝힌 공급 능력은 파주 200MW(메가와트)를 포함해 600MW 이상 수준으로 GW급에는 미치지 않는다.
재원 조달 방식도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LG유플러스는 외부 자금 조달보다는 자체 현금흐름으로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단계적으로 집행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경쟁사들이 조직 개편까지 단행하며 대규모 투자 통로를 확보하려는 움직임과 대조된다.
SK텔레콤은 데이터센터 전문 법인을 새로 세워 대규모 재무적투자자(FI) 유치에 유리한 구조를 만들었다. 올해 6월 KT와 KT클라우드 합병설이 나온 것 역시 AI 데이터센터 규모 확대와 맞물려 있다.
규모 경쟁에서 한 발짝 떨어진 LG유플러스가 파고드는 지점이 구축 속도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모듈러 데이터센터'다. LG유플러스는 9월4일 경기 안양 평촌메가센터에서 GS건설과 자이C&A, 간삼건축, D&O CM 등 4개사와 '사전제작형 모듈러 데이터센터(PMDC) 얼라이언스'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식에는 홍 사장이 직접 참석했다.
파트너로 택한 GS건설은 국내 대형 건설사 가운데 모듈러 공법에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해 온 곳으로 꼽힌다. 2020년 목조 모듈러 전문 회사 자이가이스트를 세우고 유럽과 미국의 모듈러 기업 3곳을 인수했으며, 경쟁사들이 사업을 접는 동안에도 국내 모듈러 법인은 유지했다.
PMDC는 서버와 건축 구조물, 전력·냉각 설비를 모듈 단위로 공장에서 미리 만든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이다. 기존 방식으로 데이터센터를 지으면 부지 확보부터 건설, 설비 설치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반면 PMDC는 공장에서 모듈을 만드는 동안 현장에서 기초 작업을 병렬로 진행할 수 있어 공정 시간이 줄어든다. 기존 방식으로 2~3년이 걸린다면 PMDC는 이를 수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구축 속도가 중시되는 것은 AI 인프라의 세대교체 주기가 워낙 짧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가 지어지는 속도보다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발전하는 속도가 훨씬 빠른 탓에, 구형 GPU를 전제로 설계를 마쳐놓으면 준공 시점에는 최신 GPU를 담기 어려운 시설이 될 수 있다.
다만 LG유플러스가 기대하는 만큼 속도를 끌어올리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모듈러 데이터센터는 현행 건축법상 지위가 명확하지 않아 인허가 과정에서 해석 차이가 생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9월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연 'AI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 하위법령 공개토론회에서도 모듈형 전기실 등을 건축물이 아닌 설비나 장치로 분류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 연구반은 현행 법률의 위임 범위만으로는 규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송도영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이번 시행령에서 건축법 특례를 규정하기는 어렵고 법률 개정이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바라봤다. 공장에서 모듈을 빨리 만든다 하더라도 인허가에서 기존 건축물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면 속도 이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비용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 모듈러 공법은 주택을 기준으로 할 때 기존 방식보다 최종 공사비가 30%가량 높아지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