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씻으려고 들어간 공중 화장실에 난데 없이 비누 조각상이 보인다. 만져도 되는건지 당황스럽다.
서울 금천구 독산역 공중화장실에 7일 난데 없는 비누 조각상이 등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7일 서울 금천구 독산역 공중화장실에 형광 연두색 조각상이 등장했다. 석고 조각상이 아니라 비누로 만든 조각상이었다.
이 조각상은 금천구의 공공미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작품 이름은 '화장실 프로젝트'.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작업을 펼치는 신미경 작가(59)의 작품이다.
비누 조각상은 올해 9월7일부터 내년 8월31일까지 독산역을 비롯해 금천뮤지컬센터,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제조업체 대동몰드&리빙의 화장실 등 4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비누 조각상 작업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오랜 유물이 시간이 흘러 닳은 모습이 비누와 비슷하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비누가 사용되며 닳아가는 모습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람의 손에 의해 닳아진 비누 조각상들이 다시 미술관에 전시됐다. ⓒ 코리아나미술관
신미경 작가는 이전에도 비슷한 비누 조각상을 화장실에 비치한 뒤 닳은 비누 조각상들을 미술관에 전시하기도 했다. 2023년 3월부터 6월까지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시간/물질 : 생동하는 뮤지엄'이란 제목으로 열린 전시였다. 이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일상적인 행위 자체가 미술관에 전시되는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웠다.
화장실에 비치된 모든 비누 조각상은 당연히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진 않았다. 일부 시민은 자신의 이름을 손톱으로 새기거나, 부러뜨리거나, 심지어 떨어뜨려 밟기도 했다. 이에 신미경 작가는 2023년 국내 디자인 매체인 디자인프레스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비누 조각이 어떻게 되든 그냥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을 새삼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비누처럼 만지는 작품도 있지만 직접 '먹는' 작품도 있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무제(셀로판지에 포장된 사탕, 무한 공급)'란 작품은 작가의 '이상적인 사탕의 총 무게 450~540kg'의 지침을 각 미술관 작품 관계자가 이행한 결과물이다. 흔히 '캔디 스필스'(Candy Spills)라고도 불린다. ⓒ 허프포스트
건물 로비를 들어갔더니 바닥에 파란 셀로판지로 포장된 사탕이 널브러져 있다. 작품 관계자는 사탕을 집어 먹으라 권유한다. 진짜 먹어도 되는 사탕인걸까.
이 사탕더미는 쿠바계 미국인 작가인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무제(셀로판지에 포장된 사탕, 무한 공급)'라는 작품이다. 사람들이 바닥에 깔린 사탕을 주워 먹으며 사탕이 사라지는 과정 자체가 작품이 된다.
시민이 사탕을 먹으면 빈 자리를 새로운 사탕으로 채워넣는다. 이를 보고 존재의 소멸과 생성의 무한 굴레로 읽어낼 수도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의 안소연 수석 큐레이터는 이 작품을 두고 "사탕이 소멸되는 것은 인간의 필연적 죽음, 그리고 다시 채워지는 사탕은 죽음과 부활의 반복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먹는' 작품을 넘어 '입고 가져가는' 작품도 있다.
전시 관람객들은 버려진 옷을 입어보거나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 ⓒ 구글 아트 컬쳐
지난 2015년 프랑스 파리 조폐국에서 '날 가져가줘, 난 네 꺼야'(Take Me, I'm Yours)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에선 버려진 옷 무더기가 쌓여있다. 관람객들이 마음에 들면 입어보기도 하고 심지어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 옷이 전시장 밖으로 나와 개개인의 집으로 돌아갈 때 새로운 생명이 불어넣어진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렇듯 현대미술에서 관객의 참여까지 작품의 한 요소가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작품을 훼손하지 않고 거리를 두며 바라보는 데에서 벗어나 직접 만지고 먹고 가져가며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