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이 2030년 수주잔고 48조 원이라는 공격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회를 미국에서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미 투자의 초기 방향성이 에너지 산업으로 설정된 가운데 가스터빈에 이어 대형원전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쌓아온 역량이 수주 성과로 돌아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왼쪽)이 2026년 1월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현장에서 두산 부스에 전시된 가스터빈 모형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두산
9월9일 두산에너빌리티에 따르면 2022년 채권단 관리체제를 마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한 뒤 2026년까지 4년 연속으로 연간 수주목표 초과 달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이 채권단 체제를 조기에 졸업한 시점과 맞물려 두산에너빌리티의 대형원전, SMR, 가스터빈, 신재생에너지 등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부문의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이후 두산에너빌리티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 연속으로 연초 세웠던 수주목표를 웃도는 신규수주를 기록했다. 특히 2025년에는 당초 경영계획 10조7천억 원을 32% 웃도는 신규수주 14조1천억 원을 달성했다.
올해도 연간 목표로 13조3천억 원을 설정한 가운데 상반기에만 절반이 넘는 7조1천억 원 규모의 새 일감을 확보하며 초과 달성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특히 박 회장은 대형원전, 가스터빈 등 수익성이 우수한 기자재를 중심으로 2030년 48조 원에 이르는 수주잔고를 쌓겠다는 중기 목표를 세우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30년 수주잔고 목표를 47조7천억 원으로 잡았다. 2025년 말 수주잔고 23조2천억 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나는 공격적 목표로 평가된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주 확대에는 원전과 가스터빈이 중심에 서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2030년 수주잔고 목표의 사업별 비중을 보면 원전 분야가 27조2천억 원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을 가스터빈 중심 가스·수소 분야가 7조 원을 차지한다. 2025년 말 사업별 수주잔고와 비교하면 원전은 2배 이상, 가스·수소는 3.5배 늘리겠다는 목표다.
한국의 대미 투자 윤곽이 나타나는 가운데 박 회장이 가스터빈을 시작으로 대형원전까지 전방위 수주 기회를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로는 미국 텍사스의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방안이 매우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총사업비는 220억 달러(약 30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현재는 1단계 가스터빈 1.4GW(기가와트)를 개발하고 이후 사업성 등을 고려해 4.9GW를 순차적으로 확대해 모두 6.3GW 규모의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로 예상된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가스터빈 수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빠르게 일감 확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 규모도 최대 4조 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승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8일 유틸리티산업 보고서에서 “두산에너빌리티는 380MW(급) 가스터빈 생산업체로 직접적 수주 기회를 보유하고 있다”며 “가스터빈은 긴 리드타임(공급 기간)을 고려할 때 다른 기자재보다 발주 시점이 앞설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그간 가스터빈 수주에서 경영상 비밀을 이유로 구체적 수주 규모를 알리지 않았다. 다만 한 연구원은 가스터빈 1기당 3천억 원을 가정해 1단계에서 4기, 이후 이뤄질 단계적 확대 과정에서 최대 8기 등으로 모두 4조2천억 원까지 두산에너빌리티가 수주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세계에서 5번째로 가스터빈을 개발한 기업으로 2026년 1분기 7기를 포함해 지금까지 북미에서만 12기의 가스터빈을 수주했다. 단순히 대미 투자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현지에서도 이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박 회장은 대형원전에서 수주잔고를 쌓는 데 더욱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국의 대미 투자에서 후속 프로젝트로 유력한 사업은 대형원전 건설이 꼽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30년까지 대형원전 10기의 신규 착공 등 미국의 원전사업을 부활시키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우수한 원전 공급망 경쟁력을 활용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미 투자로서 대형원전 사업은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진 뒤 구체적 건설 지역, 원전 노형, 투자 방식 및 규모 등은 추후 결정될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인데 박 회장으로서는 다양한 사업 환경에서도 적지 않은 기회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국내 유일의 원전 주기기 제작기업으로 어떤 노형이 적용되느냐와 관계없이 주기기를 공급할 역량을 갖췄기 때문이다. 현재 대형원전 8기를 건설하고 이 가운데 미국형 원전 AP1000을 중심으로 한국형 원전(APR1400)도 일부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런데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형, 한국형 원전 모두에 주기기를 공급할 수 있다.
조재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8일 유틸리티산업 보고서에서 “원전 노형에 따라 수혜 업체 및 규모가 바뀔 수밖에 없어 이를 아직까지 정확히 확인할 수 없고 정부도 신중한 투자 기조를 보이고 있다”면서도 “두산에너빌리티는 AP1000과 한국형 원전에 모두 기자재를 공급하는 만큼 수혜 여부가 직관적이다”고 평가했다.
사업 규모 측면에서 두산에너빌리티에 대형원전은 가스터빈보다 더 큰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5년 12월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는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대형원전 사업과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원자로 주기기(NSSS) 공급계약을 따냈다. 당시 수주 규모는 4조9290억 원이고 동시에 터빈발전기 계약으로도 같은 건에서 7111억 원을 동시에 확보했다. 적용 노형이나 여러 변수에 따라 세부적 규모가 변할 여지는 있지만 원전 1기에서 최소 ‘조 단위’의 성과를 올릴 가능성은 큰 것으로 파악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분기 실적발표 IR자료에서 대미투자와 관련해 “국내 및 미국시장의 경영환경 변화로 추가 사업기회를 기대하고 있다”며 “대미 투자펀드를 활용해 미국 내 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프로젝트의 사업성 제고 및 투자 활성화, 한국 기업 참여 확대로 수주 기회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