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폭력을 '인종청소'로 규정하고 정착촌과 벌이는 교역을 전면 금지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마을. ⓒ AFP통신=연합뉴스
에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은 8일(현지시각) 하원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점령 자체를 불법으로 못 박으며, 이스라엘 국가 수립 이래 가장 강경한 대이스라엘 비판을 내놨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도 가디언 기고문을 통해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에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와 캐나다를 포함한 12개국이 동참하면서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에 등 돌리는 나라들
이번 제재는 이스라엘의 'E1 정착촌' 확장 계획이 직접적 도화선이 됐다.
E1은 예루살렘과 서안지구 최대 정착촌인 마알레 아두밈 사이 약 12㎢ 부지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지난해 8월 이곳에 주택 3400여 채를 짓는 최종 계획을 승인했는데, 이 중 1200여 채에 대한 건설 입찰이 올해 8월 실제로 발주되면서 국제사회의 반발이 본격화했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예루살렘과 정착촌이 하나로 연결되는 대신, 서안지구 북부 라말라 지역과 남부 베들레헴 지역을 잇는 통로는 사실상 끊긴다.
팔레스타인 주민 약 200만 명이 사는 서안지구가 남북으로 쪼개져, 향후 팔레스타인 국가가 지리적으로 하나로 이어지기 어려워진다는 우려에 국제사회는 20년 넘게 정착촌 건설을 받대해 왔다.
물론 이스라엘을 향한 서방의 태도 변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영국, 프랑스, 캐나다는 2025년 9월 나란히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인정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당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의 급속한 확장과 급증한 폭력,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인도적 참사를 그 이유로 꼽았다. 프랑스도 즉각적 휴전과 팔레스타인 국가 재건을 조건으로 내걸며 합류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이스라엘은 정착촌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올해 8월 E1 지역에 주택 1200여 채 건설 입찰을 강행하자,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캐나다·노르웨이 등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동 비판 성명을 냈다.
결국 이번 제재는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판단에서 나왔다는 게 밀리밴드 장관의 설명이다.
프랑스, 캐나다에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을 더한 나라들은 공동성명에서 정착촌 관련 무역 제한을 도입하거나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 EPA=연합뉴스
영국 외무장관은 유대인, "인종청소 자행된다" 직격
밀리밴드 장관은 이날 하원 연설에서 "영국 정부는 서안지구 일부 지역에서 정착민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며 "이스라엘 정부가 이런 상황을 너무 자주 못 본 척했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불법 정착촌에서 생산된 물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정착촌 건설·금융·부동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과 개인을 제재 대상에 올리기로 했다.
영국 내 정착촌 부동산 광고·판매 행사도 금지되며, 정착민 폭력을 부추긴 핵심 인물에 대한 개인 제재와 점령에 기여하는 무기 수출 허가 거부도 새롭게 도입된다. 다만 전면 무기 금수까지는 나아가지 않아 시민단체의 요구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해 예루살렘 주재 영국 총영사관을 폐쇄하고, 제러미 코빈 등 영국 의원과 활동가 12명의 입국을 금지했다. 미국은 영국과 같은 길을 가지 않겠다면서도 별다른 보복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밀리밴드 장관은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며 "이스라엘 지지와 팔레스타인 국가 지지는 모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이번 이스라엘 제재가 법제화까지는 6~9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