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옛 동독 지역인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압승을 거두며 창당 이후 최고 성적표를 받았다.
오랜 경제침체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 통일 이후 35년간 쌓인 동독 주민들의 소외감과 맞물려 폭발했고, 정보당국의 '극단주의' 경계마저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역설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과 싱크탱크들은 AfD 현상을 단순히 집권당을 향한 항의투표가 아닌 구조적 정치지형 변화로 읽고 있다.
독일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자 기뻐하는 AfD 당원들. ⓒ AFP통신=연합뉴스
9일 채텀하우스와 브루킹스연구소를 비롯한 글로벌 싱크탱크 분석을 종합하면 이번 AfD의 정치적 승리는 단발성 항의투표가 아니라 더 굳건해진 극우 지지 기반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난한 노동자들, 기존 정치권이 외면한 자리
독일 AfD의 정치적 강세 밑바탕에는 작센안할트를 포함해 독일 전반의 경제침체가 자리잡고 있다.
독일 경제연구기관 할레경제연구소(IWH)에 따르면 작센안할트의 실업률은 지난 7월 기준 8.1%로 독일 전국 평균(6.4%)보다 높았다. 실질 해당 주의 국내총생산(GDP)은 2025년 -0.2%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 성장률(+0.2%)이 저조한 가운데 지역 경제가 더욱 어려웠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작센안할트를 독일 16개 주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가장 건강지표가 낮으며, 시민참여도 가장 저조한 주로 꼽았다.
이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은 곧바로 표심으로 이어졌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 디맙의 분석에 따르면 노동자와 근로계층에서 AfD 지지율은 61%에 달했고, 자신의 재정 상황을 '나쁘다'고 평가한 유권자 중에서는 지지율이 65%까지 치솟았다.
반면 재정 상황을 '좋다'고 답한 유권자의 지지율은 37%에 그쳐 28%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포르사(Forsa)의 페터 마투셰크 소장은 튀르키예 매체 아나돌루통신과 나눈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국가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이민이 아니라 경제다"며 "기업 폐업, 자동차산업 부진, 물가 상승이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경제적 소외를 기존 주류정당들이 오랫동안 사실상 방치했다는 점이다.
독일매체 도이체벨레(DW) 분석에 따르면 노동자와 저소득층에서 AfD는 이미 독일 전국에서 39%의 지지를 얻어 가장 인기 있는 정당으로 부상했으며, 동독 지역 노동자층에서는 지지율이 절반에 육박한다.
전문가들은 사회민주당(SPD) 등 전통적으로 노동자를 대변해온 정당들이 더는 '노동자 편'으로 인식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난한 노동계층의 지위 불안과 경제적 소외감을 AfD가 정치적으로 흡수했다고 짚는다.
유럽에서 열린 극우반대집회에서 나온 깃발. ⓒ EPA=연합뉴스
독일 통일 35년, 동독 주민은 여전히 '2등 시민'으로 통한다
경제난과 함께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현재도 계속되는 옛 동독 지역의 오래된 소외감도 극우정당 약진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독일 연방정부의 통일현황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옛 동독지역 주민 57%가 스스로를 '2등 시민'으로 느낀다고 답했다.
2026년 5월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에 발표된 논문은 동서독 지지율 격차가 소득 수준보다 정치적 불신과 포퓰리즘 정서로 더 잘 설명된다고 결론짓기도 했다.
게다가 독일 정보당국의 AfD를 향한 감시와 낙인이 이런 정서를 오히려 강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방헌법수호청이 AfD 주요 지부와 연방 조직 전체를 '우익 극단주의'로 분류했음에도, 독일 공영방송연합(ARD)의 여론조사 '독일트렌드'에서는 AfD 지지자의 84%가 "당이 극단주의로 규정돼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에 비판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은 AfD를 배제하는 '방화벽 전략'이 오히려 유권자를 소외시키고 정책 마비로 이어졌다고 바라본다"고 분석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독일은 20세기 초 이미 경제 위기 속에서 극우의 발호를 겪은 바 있다.
1929년 미국발 대공황이 독일을 강타하기 전, 나치당은 1928년 총선에서 2.6%를 득표한 군소정당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1929년 130만 명에서 1932~33년 약 600만 명으로 폭증하고 실업률이 약 30%에 육박하자, 나치당 지지율은 1930년 18.3%로 뛰어 제2당이 됐다.
당시 집권 정부인 바이마르 정부(민주공화정)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무능했다. 독일 시민들은 새로운 정치를 요구했다. 1932년 7월 나치당은 37.3%를 얻어 제1당에 올랐고 이듬해 1월 아돌프 히틀러는 총리에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