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펩타이드 위탁생산개발(CDMO) 기업을 인수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7월 스위스 기반의 폴리펩타이드그룹(PolyPeptide Group)과 2조7천억 원 규모의 인수계약을 체결하고, 100% 지분 확보와 자진 상장폐지를 목표로 이 회사의 자사주를 제외한 발행주식 전량(3301만6411주)을 사들이는 공개매수에 들어갔다. 11월 말까지 최종 인수를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 인수 자금을 3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다.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되며, 청약은 11월 이뤄질 예정이다. 조달 자금 중 2조7천억 원은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에, 3천억 원은 인천 송도 제2바이오캠퍼스 증설에 쓰기로 했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사장 ⓒ 삼성바이오로직스
7일 제약·바이오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투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펩타이드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가져가기 위한 것이다.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는 현 존림 대표이사 사장이 제시한 ‘3대 성장축’인 생산능력, 포트폴리오, 지리적 거점을 모두 확장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 펩타이드가 뭐길래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모달리티’란 약물이 체내 질병을 유발하는 물질을 공격하는 수단, 작용 방식,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동안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모달리티는 주로 저분자 합성의약품과 항체를 중심으로 한 고분자 바이오의약품이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저분자 합성의약품은 분자 구조가 작고 단순하며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약물이 표적이 아닌 다양한 세포·분자에 접근해 영향을 끼칠 수 있어 독성과 부작용을 관리하는 게 어려웠다.
고분자 바이오의약품은 표적 능력이 좋고 부작용이 적지만 단백질 분자 크기가 커서 질병 원인이 세포 내에 있는 경우 치료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또 살아있는 세포를 키우고 정제하는 생산시설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해 부담이 크다.
이에 업계는 이 두 모달리티의 단점을 줄이는 다양한 대안을 고민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항체약물접합체(ADC), 메신저리보핵산(mRNA), 세포유전자치료제(CGT), 펩타이드 등이 있다. ADC는 항체와 치료약물을 결합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도록 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높인다. mRNA는 몸 안에 항원 등 특정 단백질을 생성하도록 설계도(유전정보)를 넣어주는 방식이므로 플랫폼화가 쉽고 유연성이 높아 다양한 후보물질에 대응할 수 있다. CGT는 환자의 면역세포나 유전자 자체를 치료 수단으로 활용하므로 일회성 투여만으로 장기적인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편 펩타이드는 2개 이상 50개 이하의 아미노산이 펩타이드 결합(아미노산 각각의 연결고리를 통한 아미노산의 결합)으로 연결된 아미노산 중합체를 말한다. 비유하자면, 아미노산은 레고 블록 한 개, 펩타이드는 블록을 몇 개 조립해 만든 소형 부품, 단백질은 이 부품을 쌓아올린 거대한 완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펩타이드는 저분자 의약품보다는 크지만 단백질/항체보다는 훨씬 작기 때문에, 아미노산 배열이나 구조를 변경해 수용체 결합력을 높임으로써 특정 수용체나 표적에 결합시켜 생체 내 신호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다. 또 다른 모달리티나 치료제와 결합해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당뇨 치료제(GLP-1 수용체 작용제)가 대표적인 펩타이드 계열 치료제다. 예컨대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는 혈당을 낮추고 포만감을 높이는 호르몬인 GLP-1의 아미노산 서열을 인위적으로 변형해 분해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고 체내 지속시간을 늘린 것이다.
현재 펩타이드는 비만·당뇨·대사질환 치료에서 더 나아가, 항암, 면역질환, 심혈관질환, 뇌질환, 내분비·호르몬질환 등의 치료에까지 적용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 본사 ⓒ 삼성바이오로직스
◆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펩타이드에 투자한 이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과 위탁개발 사업을 하는 CDMO 기업이다. 생산능력(84만5천 리터) 기준으로 세계 최대 캐파를 보유했다. 주력은 동물세포 기반의 항체의약품 CDMO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모달리티가 빠르게 다양해지고 있는 제약·바이오 업계 추세에 발맞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2022년 mRNA 생산설비 가동을 시작했고, ADC 생산시설도 2025년 완공하면서 생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CGT 분야는 직접적인 시설투자보다는 간접적인 전략적 투자를 통해 진출한 상태로, ‘삼성 라이프사이언스 펀드’를 활용해 오픈 이노베이션 투자를 진행 중이다. 2025년 유전자 편집 기술을 보유한 미국 아버바이오테크놀로지에 투자하기도 했다. 삼성 라이프사이언스 펀드는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공동 출자하고 삼성벤처투자가 운용을 담당하는 벤처투자 펀드다.
꿰어야 할 남은 단추는 펩타이드였는데, 문제는 펩타이드 사업이 공장만 짓는다고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실제 펩타이드 의약품 생산에는 합성·정제·분석 등 항체의약품과 다른 노하우가 필요하다. 아울러 고객사의 후보물질을 실제 상업생산 단계로 끌고 가는 데는 오랜 개발·생산 경험이 중요하다.
이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 같은 요건을 모두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번에 투입하는 2조7천억 원은 단순한 공장 시설 가격이 아니라 펩타이드 CDMO 사업 진입을 위해 필요한 시간과 기술을 한꺼번에 사는 비용으로 쓰인다고 볼 수 있다.
◆ 3대 성장축 대폭 전진, 투자 성과 실현은 과제
존림 대표이사 사장은 회사의 3대 성장축으로 생산능력 확대, 포트폴리오 다각화, 글로벌 거점 강화를 제시해 왔다. 이번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는 이 3대 성장축에 한꺼번에 기여하는 결단으로 평가된다. 존림 사장 역시 7월 인수 발표 직후 “이번 인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3대 성장축을 모두 아우르는 전략적 결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폴리펩타이드그룹은 펩타이드 의약품 개발·생산 경험이 1천 건이 넘고, 미국, 유럽, 인도 등 5개국에 6개의 생산거점과 R&D 센터, 1500여 명의 숙련된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인수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항체, mRNA, ADC에 이어 펩타이드까지 아우르는 멀티 모달리티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됐다.
장밋빛 미래만큼이나 남은 과제도 뚜렷하다. 존림 사장은 바이오 공정에 특화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화학 합성에 특화된 폴리펩타이드그룹의 서로 다른 조직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나가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됐다.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유상증자로 불만을 갖게 된 기존 주주들을 달래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대규모 투자를 실적으로 증명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계에서는 이번 딜을 두고 ‘결국 비만약 시장을 보고 투자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이 지나치다고 하더라도, 미래 비만약 시장의 주류 기전이 펩타이드가 아닌 다른 모달리티로 옮겨가는 등 GLP-1 비만약의 성장 전망이 달라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