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부 작센안할트주 지방선거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집권당인 기독민주당(CDU)보다 2배 이상 많은 표를 얻으며 압승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결과가 단순한 지방선거를 넘어 내년 유럽 전역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 강경 우파 정당들에게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당장 독일 정권 교체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영국 등에서 부는 극우 바람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환호하는 독일 우파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당원들. ⓒAFP/연합뉴스
작센안할트주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AfD는 6일(현지시각) 치러진 선거에서 44.4%를 득표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의 17~18%대 득표율을 2배 이상 앞섰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이는 2021년 직전 선거 당시 AfD 득표율(20.8%)의 2배를 넘는 수치이자, 창당 이래 최대 득표율이다. 반면 기독민주당(CDU)은 2021년 37.1%에서 반토막이 나며 2002년부터 이어온 주정부 주도 정당의 자리를 내줄 위기에 처했다.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은 각각 9%대로 나타났고, 좌파당도 8%대에 그쳤다.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약 80%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해, 유권자들의 정치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음을 보여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번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결과를 게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게시물에 별도의 언급은 달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에 앞서 AfD가 좋은 결과를 낼 것으로 바라보는 전망을 두고 "독일과 미국에 굉장한 날이다"고 환영한 바 있다.
나치 이후 첫 극우 주정부, 현실이 될까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 EPA=연합뉴스
이번 선거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독일'이기 때문이다.
나치즘의 참혹한 역사를 겪은 독일은 전후 극우 세력을 정치 체제에서 철저히 배제해왔다. 그런 독일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극우 정당이 주(州) 정부를 이끌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는 단순한 지방선거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다만 AfD가 곧바로 작센안할트주에서 집권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과반 의석 확보에는 미치지 못했고, 다른 정당들은 나치 구호를 사용하고 홀로코스트를 축소해온 AfD와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독일 정보기관은 AfD를 이민 배경을 가진 독일인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한다는 이유 등으로 '극단주의 의심 단체'로 분류해 감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독민주당(CDU)과 사회민주당(SPD), 녹색당이 이른바 '무지개 연정'을 구성해 AfD의 집권을 막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럼에도 이번 결과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에게 주는 정치적 타격은 작지 않다.
고물가와 높은 실업률 등 생활비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집권 세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고스란히 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럽 내 독일의 리더십이 이미 흔들리는 가운데, 당내에서는 이번 참패의 책임을 메르츠 총리에게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한때 상상하기 어려웠던 '총리 조기 퇴진'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유럽 전역으로 번지는 극우 바람
프랑스 유력 대선 주자인 극우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의원. ⓒ EPA=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이번 결과를 독일만의 사건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극우 세력을 유럽 권력의 중심으로 한 걸음씩 끌어올려 온 흐름의 연장선으로 바라봤다.
정치리스크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유럽 담당 분석가 무스타파 라만은 뉴욕타임스에 "선진 유럽이 일종의 국가 기능 마비를 겪고 있다"며 "정부들이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유권자에게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7년 봄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프랑스에서는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며, 14년간의 도전 중 대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페인에서 극우정당 복스(Vox)는 부패 스캔들에 흔들리는 사회당 정부를 위협하며 차기 연정 참여 가능성을 키우고 있고, 영국에서는 급부상한 극우정당 '개혁영국'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당이 지난 7월 총리를 교체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와 독일 모두에서 극우를 배제해온 이른바 '방역선(cordon sanitaire)' 원칙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물론 극우의 상승세가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헝가리에서는 16년 장기집권한 극우 지도자 빅토르 오르반이 올해 4월 정권을 내줬고, 영국 극우정당 개혁영국의 나이절 파라지 대표도 금융 스캔들과 당내 분열로 기세가 한풀 꺾인 상태다.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처럼 외교·유럽 정책에서 온건 노선을 택해 장기집권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경제 불만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번 독일 선거가 보여준 기성 정당에 대한 실망이 극우 지지로 이어지는 흐름이 내년 유럽 선거 시즌 내내 반복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