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실적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가격 상승세가 주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AI 가치사슬(밸류체인) 안에서 메모리 가격 상승이 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탓이다.
두 기업은 범용 및 모바일용 D램, 낸드플래시에서 CXMT와 YMTC 등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도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과 여전히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이 분야에서 고객사 다변화, 수율 안정화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더욱 골몰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워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할지 주목된다. ⓒ허프포스트코리아
8월3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향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인 HBM 가격 상승 폭이 과거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우성 LS증권 연구원은 31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보고서에서 구체적 HBM 가격 상승폭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HBM 공급사로서 프리미엄이 정상화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UBS,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 등에서 내놓은 전망과 다소 다른 시선이 나온 것이다.
UBS는 2026년 HBM 평균 가격이 2025년과 비교해 79%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예상치 67%보다 높여 잡은 것이다. 트렌드포스는 2027년 HBM 가격이 전년과 견줘 70%에서 최대 140%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HBM 가격이 과거 만큼 치솟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는 과대한 메모리 가격 상승이 AI 시장 확대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LS증권은 2027년 SK하이닉스의 HBM 영업이익률 전망치를 기존 80%에서 60%로 낮춰 잡았다. 이는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가 제품 가격 인상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정 연구원은 SK하이닉스 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의 HBM 영업이익률이 80%까지 높아지면 엔비디아가 매출총이익률 75%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 가격을 추가로 인상해야 한다”며 “이는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빅테크들의 서버 예산 등의 확대를 제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 연구원은 삼성전자 보고서에서도 “메모리 공급 부족은 중장기적으로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다만 가격 상승으로 서버 예산 내 메모리 비중이 높아진 만큼 추가적 가격 상승 여력은 이전보다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바라봤다.
시장에서도 높은 수준의 HBM 가격 상승이 오히려 산업 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짚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메모리 가격 상승은 클라우드서비스사업자(CSP)가 목표하는 AI 칩 구매량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며 “CSP는 향후 HBM 용량 조정(하향) 등의 전략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도 놓여 있다.
최근 기업공개(IPO)를 통해 666억1천만 위안(약 13조7천억 원)을 조달한 중국 CXMT는 28일 실적발표에서 2026년 상반기 매출 1503억 위안(약 30조7천억 원), 순이익 776억 위안(약 15조8천억 원)을 거뒀다고 알렸다.
2025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873% 급증했고 순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한 것이다. 당초 목표치로 제시했던 수치들과 비교하면 매출은 25%, 순이익은 36% 웃돌았다. 글로벌 메모리 공급 부족이 지속함에 따라 범용 D램(DDR)과 저전력 D램(LPDDR) 중심의 제품 가격 상승 및 판매 급증에 힘입어 호실적을 거둔 것이다.
특히 CXMT는 자체 개발한 차세대 저전력 모바일 D램(LPDDR6) 제품이 샘플 공급 및 검증 등을 마치고 양산 단계로 전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CXMT가 내놓은 LPDDR6 사양은 최대 12.9Gbps의 데이터 전송 속도와 16GB 용양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6년 공개한 동일 세대 제품에 근접한 수준까지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CXMT는 D램 공장 3곳을 증설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또 다른 중국 기업인 YMTC는 최근 IPO 준비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2027년 낸드플래시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글로벌 낸드 점유율은 삼성전자(25%), SK하이닉스(22%)가 1, 2위를 차지한 가운데 YMTC가 점유율 14%로 일본 키옥시아를 제치고 처음으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산업의 핵심인 HBM에서는 중국 기업과 적지 않은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6세대(HBM4)를 양산하고 7세대(HBM4E)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CXMT는 2026년 4세대(HBM3), 2027년 5세대(HBM3E)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격 상승폭 제한 전망 속에서도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을 벗어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한 활로는 HBM에서 나오는 셈이다.
이에 가격 협상력을 넘어 엔비디아 이외에 신규 고객사를 확보하는 일, 수율을 개선하는 일 등이 향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기술 격차 유지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이외에도 AMD, 구글, 오픈AI에 이어 엔트로픽에도 HBM을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자체 AI 칩을 개발하는 빅테크에 HBM 공급량을 늘려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파악된다. UBS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7년 HBM 점유율 1위(4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의 HBM4 수율이 안정적 수준인 80%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율 개선은 향후 삼성전자 수익성 개선의 무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에 첫 HBM 생산거점인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패키징 공장(인디애나 팹) 건설을 본격화하며 경쟁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추가 증설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 고객사 확보, 점유율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AI 메모리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도 HBM4 수율을 80% 안팎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 생산거점을 마련해 HBM 사업 확장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어드밴스드패키징은 칩 크기를 줄이는 미세 공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개의 칩을 하나로 묶거나 수직으로 쌓아 성능을 높이는 첨단 반도체 후공정 기술을 의미한다. D램은 적층 수가 높아질수록 수율 관리 난도가 높아져 패키징은 수율을 개선해 원가를 줄일 수 있는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