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라라크섬의 이란 혁명수비대 기뢰설치용 로켓발사대 2곳을 타격하면서 한 달 간 소강상태였던 미국과 이란의 전선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유럽·아시아·중남미 사령관들은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에게 국방장관 명령집(SDOB)을 통해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직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지금의 장기 대치전에 힘이 부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함. ⓒ 연합뉴스
미국 중부사령부는 30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임박한 위협을 가하는 이란 혁명수비대 기뢰부설군을 향해 제한적이고 정확한 공습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미군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해상기뢰를 실은 로켓을 호르무즈 해협으로 발사할 준비를 하는 정황이 포착돼 선제 타격했다고 설명했다. 미군의 이번 라라크섬 공습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19일 이란을 향한 대대적 경제고립 작전을 선언한 뒤 처음 나온 군사행동이다.
이란 타스님 통신은 이번 공습으로 최소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곧바로 미국의 라라크섬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31일(현지시각) 요르단 안에 있는 미군기지 2곳을 탄도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인명피해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별도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미군 함정을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기 대치 소모전'이 미군에 유리할까, 미군 수뇌부도 "우려"
문제는 이런 미국의 전략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에 미군 내부에서도 의구심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이 입수해 단독 보도한 미국 국방장관 명령집(SDOB) 문건을 보면, 미국-이란 전쟁에 투입된 병력 5만 여명 가운데 일부는 9월까지, 일부는 2027년까지 중동 현지에 남으라는 명령이 담겼다.
그런데 유럽사령부, 태평양사령부, 남부사령부 사령관과 해군 참모총장은 이 연장 명령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명시했다. 이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명령을 이행하겠다는 뜻이지만, 미군 수뇌부의 우려가 문서에 공식 기록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특히 미국 해군은 가장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대릴 커들 미국 해군참모총장은 미국 구축함 전력의 4분의 1만이 배치 가능한 상태라며 전쟁의 종료시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 수준의 지원을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남부사령부도 중부사령부에 함정과 감시항공기를 빌려준 탓에 정작 미국 본토방어와 관련된 임무수행 능력이 떨어졌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유리하게 전쟁을 끝내려고 하지만, 이란은 대다수 미국인이 이번 전쟁을 좋아하지 않고 미국 군사력에 미치는 피해가 커진다는 것을 알고 항복을 거부한 채 버티고 있다"며 "미군이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보낸 우려는 트럼프 행정부가 처한 딜레마를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중동에서 작전 중인 미군 E/A-18G 전자전 항공기. ⓒ 미국 중부사령부=연합뉴스
"미국은 왜 전쟁을 끝지지 못하나"
이런 미군 내부의 경고는 미국이 그리는 승리 시나리오가 비현실적이라는 점과 관련 깊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왜 미국은 왜 전쟁을 끝내지 못하나'라는 제목의 분석기사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정치적 후폭풍과 체면을 우려해 미국-이란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애초 이란을 상대로 신속하고 결정적 승리를 장담했지만, 공중 폭격만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재개통하기 역부족이라는 판단에 따라 해군 봉쇄와 경제제재를 앞세운 장기 압박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뉴욕타임스는 "문제는 이런 미국의 압박 전략에 명확한 종료시점이 없다는 것"며 "이란 지도부는 정권의 존립을 걸고 버티는 반면, 미국에게 이번 전쟁은 실존적 위협이 아니어서 이길 명분은 크지 않은데 발을 빼자니 정치적 체면과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율이 걸려 딜레마에 놓여 있다"고 바라봤다.
미국은 이번 전쟁이 장기화 됨에 따라 병참과 군 사기측면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2월 말 이란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으로 바레인의 미국 해군 5함대 사령부가 피해를 보면서 미국 해군은 주보급 거점을 3500km 이상 떨어진 인도양 디에고가르시아 기지(영국령)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 여파로 이란 앞바다에 배치됐던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은 270일 넘게 항구에 기항하지 못한 채 해상에 머물렀고, 식량, 위생용품 부족과 우편물 지연 등 보급차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승조원 여러 명이 바다로 뛰어드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미군의 사기 측면에서도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논란이 커지자 결국 미국 해군은 니미츠급 항모 조지워싱턴함을 중동에 급파해 링컨함과 교대시키도 했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이번 미국-이란전쟁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이 겪었던 상황과 판박이라고 바라봤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 사망 뒤 철군의 최적기를 놓친 채, 국가 신뢰도 실추와 미군 전사자에 대한 부채 의식, 승리 집착이 겹쳐 혼란스러운 패배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마무리 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