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면 늘 비슷한 고민이 시작된다. 이걸 줘도 괜찮을까. 혹시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쩌지.
그래서 우리는 가장 무난한 것을 골랐다. 한우와 굴비, 참치와 식용유처럼 이름만 들어도 ‘명절 선물’이 떠오르는 것들이다. 받는 사람이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도, 싫어할 일은 적을 것 같은 선물이었다.
그런데 올해 추석 유통가의 선물 상자는 조금 달라졌다. “무엇을 줄까”보다 “그 사람이 뭘 좋아할까”가 먼저다.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정판 라면을, 미식에 관심 많은 사람에게는 셰프의 레시피를,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 캐릭터가 담긴 선물을 고른다. 한우조차 ‘많이 담은 것’보다 좋은 부위를 조금씩 나눠 먹을 수 있는 작은 선물세트가 늘고 있다.
삼양식품이 추석을 맞아 프리미엄 라면을 묶은 ‘삼양1963 X 짜르르 우지 선물세트’를 한정 출시했다. 평소 즐기던 라면도 특별한 패키지와 희소성을 더해 명절 선물로 재탄생하고 있다. ⓒ삼양식품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추석 선물세트 시장에서는 전통적 품목 경쟁보다 소비자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한 상품이 대폭 늘었다. 한우와 굴비 등 전통적 명절 선물은 소비자의 생활 방식에 맞춰 작아지고 세분화되는 반면, 평소 즐기던 라면과 조미료, 좋아하는 캐릭터와 콘텐츠는 추석 선물 시장의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 평소 장바구니에 담던 것이 명절 선물이 된다
평소 장바구니에 담던 상품들이 명절 선물의 새로운 선택지로 들어오고 있다. 라면과 간식, 캐릭터 상품처럼 일상에서 즐기던 것들에 한정판의 희소성과 브랜드의 감성, 특별한 패키지를 더해 ‘명절에 선물할 이유’를 만드는 방식이다. 누구에게나 무난한 상품을 고르던 데서 벗어나, 받는 사람이 평소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기준으로 선물을 고르는 흐름이 짙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양식품은 프리미엄 국물라면 ‘삼양1963’과 짜장라면 ‘짜르르 우지’를 묶은 ‘삼양1963 X 짜르르 우지 선물세트’를 2천 세트 한정으로 내놨다. 앞서 설에는 고기 선물세트를 연상시키는 ‘삼양1963 선물세트’를 선보인 데 이어 추석에도 같은 콘셉트를 이어갔다.
CU는 아예 ‘달라진 명절, 달라진 선물의 기준’을 콘셉트로 포켓몬 상품과 취미용품, 웰니스 상품 등을 대거 구성했다. 올해 설 선물 매출이 전년보다 13.8% 증가했고, 특히 10만원 이상 가격대 상품 매출은 39.2% 늘었다는 자체 분석도 이런 변화를 뒷받침한다.
스타벅스의 추석 기프트 푸드도 같은 흐름에 있다. 쿠키와 러스크, 전병은 새로운 상품이 아니지만 스타벅스 특유의 브랜드 감성과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더해 명절 선물로 재구성했다. 이제 명절 선물은 낯선 상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평소 좋아하던 것을 특별한 방식으로 건네는 쪽으로 넓어지고 있다.
◆ ‘무엇을 샀느냐’만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중요하다
상품 자체만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취향과 이야기도 중요해졌다. 같은 생선구이와 전복죽이라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탄생했는지가 새로운 선물의 가치를 만든다. 익숙한 참기름과 조미료 역시 맛을 세분화하거나 브랜드의 역사를 입히면서 단순한 생필품이 아닌 ‘고를 이유가 있는 선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낚시 콘텐츠로 알려진 유튜버 ‘진석기시대’와 협업해 가시를 제거한 간편 생선구이를 선물세트로 구성했고, 일식 셰프 장호준과 함께 전복죽을 개발했다. 중식 셰프 정지선이 추천한 프리미엄 백주도 명절 선물 목록에 올렸다.
대상 청정원도 전통적 명절 선물세트에 브랜드의 이야기와 취향을 입혔다. ‘참기름 로스팅 셀렉션’은 참깨 볶음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풍미를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올리브유 역시 품종별 맛과 향을 즐기는 방식으로 차별화했다.
‘미원 헤리티지 선물세트’는 1960년대 선물세트를 재현한 레트로 디자인에 소포장 제품을 담아 조미료에 소장 가치를 더했다. 차인철 아티스트와 협업한 온라인 전용 선물세트 21종에는 작가의 그래픽 디자인을 적용했다. 선물의 내용물뿐 아니라 브랜드의 역사와 디자인, 협업 자체가 선물의 가치가 되고 있는 셈이다.
◆ ‘많이’보다 ‘나에게 맞게’
명절 간소화와 가구 구성 변화는 ‘많이 담을수록 좋은 선물’이라는 기존 공식까지 바꾸고 있다. 풍성함을 앞세운 대용량 대신, 받는 사람이 필요한 만큼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 역시 취향을 고려한 선물의 한 방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추석 한우 선물세트를 역대 최대인 12만 세트 준비하면서 1++등급 한우와 특수부위를 200g 단위로 나눈 소포장 상품을 대폭 확대했다. 소담 세트의 매출 비중은 2021년 25%에서 지난해 34%로 높아졌으며 올해는 처음으로 40%를 넘어설 것으로 회사는 예상하고 있다.
‘나에게 맞는 선물’의 기준은 생활 방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선물을 고르는 기준은 상품의 가격이나 양을 넘어 생산 방식과 환경적 가치로까지 넓어지고 있다. 저탄소 인증 과일과 유기농 견과류, 잡곡처럼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함께 담은 상품도 명절 선물의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유기농 올리브유 등 친환경 가공식품 선물세트 매출은 올해 설과 지난해 추석 모두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이마트는 이러한 수요를 반영해 이번 추석 친환경 선물세트 물량을 지난해보다 20% 늘리고 유기농 올리브유 등 신상품도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