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자 가운데 손봉기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재제청을 요청하기로 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이 28일 대법관 후보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오는 31일에 열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출석을 압박하는 동시에 손 부장판사가 아닌 다른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갈등을 계기로 민주당 내부에서 대법원장의 권한을 축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사법개혁 법안 처리 논의도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청와대가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자 임명을 거부하고 재제청을 요청한 것은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처음 있는 일로 여권과 사법부 사이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모습이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청와대는 오늘 두 대법관 후보자 중 손봉기 후보자에 대해 국회에 임명 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며 "이에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후보자를 재제청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청와대와) 실질적인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손 후보자를 일방적으로 서면 제청했다"며 "그동안의 협의 관행은 임명권자와 제청권자 한쪽의 의사만으로 대법원이 구성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는데, 사법부의 독립을 지탱한 근거를 스스로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손 후보자 제청 과정에 흠결이 있었던 만큼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이날 국회에 김성수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만 제출할 예정이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 후보자를, 이흥구 전 대법관 후임으로는 김성수 후보자를 제청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청와대의 재제청 결정에 발맞춰 조 대법원장을 정면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민주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들은 조 대법원장이 손 후보자에 대한 제청을 자진 철회하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 가운데 손 후보자를 제외한 다른 인사를 골라 대통령과 협의한 뒤 다시 제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영교 국회 법사위원장(왼쪽)과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 ⓒ연합뉴스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민주당 간사인 김승원 의원은 이날 오전 의원 워크숍 종료 직후 취재진과 만나 "협의없이 제청한 후보자를 자진 철회하고 남은 3명의 후보자 가운데 협의해 재제청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만약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에 응하지 않으면 법원조직법 위반 행위로 규정한 뒤 후속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조 대법원장은 오는 31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관련 계획에 대해 소상히 밝혀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이번 대법관 제청 논란을 계기로 대법원장의 권한을 손질하는 사법개혁 입법에도 속도를 낸다는 방침을 정했다. 민주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들은 워크숍에서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행정 권한을 분산하고 대법관 제청 절차를 개선하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청래 전 대표도 대법관 공백을 막기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정 전 대표가 준비하고 있는 개정안은 대법관의 임기가 끝나기 한 달 전까지 후임 대법관 제청 절차를 마치도록 하는 내용이 뼈대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과 대법원의 갈등이 얼마나 더 격화될 지 여부는 조 대법원장의 대응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재제청 요청을 수용하지 않거나 국회 법사위 출석 요구에 불응한다면 정부여당과 사법부의 갈등은 대법관 인선을 넘어 사법부 권한과 운영체계 전반을 둘러싼 정면 대결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사이에 권한 다툼이 발생했을 때 헌재에 판단을 구하는 제도다. 청와대가 재제청을 요구함으로써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이 침해받았다는 주장을 펼 수 있다는 취지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사태가) 이 정도면 조 대법원장이 31일에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게 맞다"라며 "민주당이 아니라 조 대법원장이 답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