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시사 유튜브 프로그램 ‘장르만 여의도’가 방송 중에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웃음거리로 삼으면서 정치권에 거센 파장이 일고 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오른쪽)가 26일 JTBC 유튜브 방송 '장르만 여의도'에서 민혁당 발언을 한 뒤 진행자인 정영진씨(왼쪽)와 함께 웃고 있다. ⓒ장르만여의도 유튜브 갈무리
논란이 된 대화는 '조국혁신당 당명 변경'을 다루면서 불거졌는데 조국혁신당은 강도 높게 비판하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장르만 여의도는 그동안 출연자들의 대화로 여러 차례 논란이 불거진 바 있는데 이번 인혁당 희화화 논란은 "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많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유시민 작가가 조롱 비평 1위라고 언급한 '장르만 여의도'에서 곧바로 논란이 발생하자 다시 한번 유 작가의 통찰력이 입증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조국 조국혁신당 정책연구원장은 27일 페이스북에 "'장르만여의도' 출연자가 조국혁신당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크게 봐서 비평의 자유이고 언론의 자유지만 킬킬대며 사법살인의 희생자들을 연상하게 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며 "문제가 제기되자 제작진은 간단한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이렇게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대표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JTBC 뉴스룸은 한 때 신뢰도 1위였는데 JTBC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 하나가 뉴스룸의 신뢰도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JTBC는 뉴스룸의 신뢰도냐, 조롱 원탑 막말 장난질로 조회수나 따먹는 유튜브 방송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현명한 판단이 있으리라 믿어보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JTBC 장르만 여의도가 이번 논란의 책임을 지려면 방송을 폐지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국혁신당도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명예훼손 및 방송 심규 위반 등 가능한 모든 법적·행정적 수단을 강구하여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의 발단은 전날 방영된 ‘장르만 여의도’에서 출연진이 조국혁신당의 당명 개정 가능성을 두고 대화하던 중 약칭 '민혁당'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김준일 시사평론가가 "민혁당? 다 사형당할 것 같은데"라는 발언을 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김 평론가의 말에 진행자인 정영진씨도 웃음으로 반응했다.
민혁당과 사형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 중 하나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연상시키는 발언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던 1975년 중앙정보부가 조작해 무고한 민주화운동 인사 8명이 사형 선고를 받고 불과 18시간 만에 처형 당한 대한민국 사법사상 가장 부끄러운 ‘사법살인’ 사건을 가벼운 농담거리로 소비한 것이다. 사법살인 희생자들은 사형이 집행된 지 32년이 지난 2007년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됐다.
논란이 일자 김 평론가는 사과문을 내어 "인혁당 고인과 유가족께 깊은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라며 "조국혁신당의 당명 변경 가능성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혁신당이란 이름은 좋으니 진보혁신당이나 민주혁신당은 어떨까 제안을 했고 당명줄임말을 하는 언급하는 과정에서 민혁당이 인혁당과 비슷하다며 '사형'이란 단어를 썼다"라고 설명했다.
김 평론가는 "상처를 입으신 유가족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라며 "불쾌감을 느끼신 혁신당 구성원께도 사과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방송 제작진도 댓글로 사과 입장을 밝혔고 영상을 내린 뒤 김 평론가의 발언 부분이 삭제한 영상을 다시 올렸다.
‘장르만 여의도’는 시사 유튜버와 패널들이 모여 거침없는 입담을 통해 정치를 예능처럼 소비하고, 해학을 담는 컨셉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출연자들의 잇달은 발언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리스크 관리를 하기는커녕 도리어 자신들만의 강점이라는 취지의 방송을 이어갔다.
대표적으로 성치훈 민주당 부대변인이 지난 7월7일 본격적 방송이 시작되기 전 마이크가 켜진 상태에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광주제일고등학교 선수들을 향해 내뱉은 5·18 조롱 문구인 "가야지 가야지~"를 그대로 활용해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조롱했다.
2023년 12월에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국회 앞 식당에서 자신을 비판하던 안 의원에게 칸막이 너머로 고함을 친 일을 묘사하면서 "이 XX가"라고 했다가 사과한 적이 있다.
이번 '민혁당=사형' 논란은 시사 프로그램이 대중의 재미를 쫓는다는 명분 아래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과 역사의식을 어디까지 상실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 작가가 24일 오후 유튜브 채널 '저널리스트'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저널리스트 갈무리
이런 가운데 유시민 작가가 '장르만 여의도'를 평가한 발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 작가는 지난 24일 유튜브 '저널리스트'에 출연해 JTBC의 ‘장르만 여의도’를 두고 "조롱 비평으로는 거기가 원탑"이라며 "정말 다양하게 비꼰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 유 작가의 발언이 또 맞았다"라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하는 패널 대부분은 그동안 유 작가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적어도 유 작가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삶을 기록하는 데 직접 참여함으로써 '시민적 책무'를 다했다.
유 작가는 지난 3월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우홍선씨의 아내 강순희 여사의 구술 자서전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를 펴냈다.
강순희 여사는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뒤 네 자녀를 키우면서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증언해온 인물이다. 책은 강 여사의 삶과 함께 인혁당 사건 당시의 수사와 재판, 사형 집행, 유족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데 유 작가는 베스트셀러임에도 원고료 없이 자원봉사 방식으로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