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가 3인으로 압축되면서 이재근 KB금융지주 글로벌부문장 겸 WM·SME부문장이 현직 양종희 회장을 제외한 유일한 내부 도전자로 남게 됐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숏리스트 6명을 대상으로 1차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뒤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이 부문장을 최종 3인으로 선정했다. 함께 후보에 올랐던 이창권 미래전략부문장과 이환주 KB국민은행장, 그리고 익명의 외부 후보 1인은 명단에서 빠졌다.
이 부문장이 서 있는 자리는 독특하다. 그가 도전하는 상대의 성과와 그 자신의 성과가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실적을 근거로 현직 회장과 차별화하기 어려운 구도에서 그가 내세울 수 있는 명제는 교체보다 ‘계승’과 ‘수성’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계승의 자격을 뒷받침하는 것이 전임 윤종규 KB금융지주 전 회장이 발탁하고 현직 양종희 회장이 세 차례나 신임을 보였던 그의 이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KB금융지주 회장 후보 숏리스트 3인이 확정되면서 이재근 KB금융지주 글로벌부문장 겸 WM·SME부문장이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에게 도전하는 유일한 내부 도전자가 됐다 . ⓒ허프포스트코리아
◆ 현 회장의 강력한 실적, 그리고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이재근의 몫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부문장이 회장 도전 과정에서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현직인 양 회장의 실적이다.
KB금융지주는 2024년 순이익(지배주주 귀속 기준) 5조782억 원을 내며 금융지주 첫 5조 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에는 5조8430억 원을 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3조8846억 원으로 사상 최대 반기 실적을 기록했다. 2025년 기준 총주주환원율은 52.4%이며, 올해 2월에는 금융지주 최초로 시가총액 60조 원을 넘어섰다.
특기할 만한 점은 양 회장에게 도전하는 유일한 내부 인사인 만큼 이 부문장의 몫도 그 성적표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재근 부문장이 총괄하는 글로벌 부문에서 KB뱅크(옛 부코핀)는 지난해 KB금융 편입 이후 처음으로 연간 흑자(현지 회계 기준)를 기록했고, 캄보디아 KB프라삭은행도 2025년 1500억 원대 이익을 내면서 안정적 이익 기반을 보여주고 있다. 이재근 부문장이 맡고 있는 WM과 SME 역시 양 회장 체제에서 그룹의 핵심 사업 영역으로 관리돼 온 분야다.
도전자가 통상 쓰는 카드는 두 가지로 수렴한다. 현직이 하지 못한 것을 하겠다거나, 잘못한 것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부문장에게는 어느 쪽도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적을 공격하면 자신의 성과를 부정하는 셈이 되고, 노선을 부정하면 자신이 맡아온 부문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 차별화 지점은 '수성'에 있다, 양종희의 성과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준비된 도전자
이 부문장이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은 ‘계승’과 ‘수성’이다. 무엇을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성과를 이어받아 지킬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것이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이재근 부문장은 KB국민은행장 재임 기간 홍콩 H지수 ELS 사태에 대한 고객 배상과 후속 조치를 직접 처리했고, 지주로 옮긴 뒤에는 그룹의 '아픈 손가락'이던 KB뱅크 정상화를 총괄했다. 두 사안 모두 기존에 누적돼 있던 문제를 넘겨받아 대응한 문제다. 이 부문장은 매 분기 한 달씩 현지에 머물며 차세대 뱅킹시스템 도입과 인도네시아 현지 금융인 출신 행장 선임을 마무리했고, KB뱅크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경영 성과를 새로 만드는 역량보다 남겨진 문제를 닫는 역량을 증명해 온 이력인 셈이다. 승계가 새 판을 짜는 일이 아니라 진행 중인 사업의 연속성을 지키는 일이라면 강점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오랫동안 ‘준비된’ 도전자라는 점도 이재근 부문장의 강점이다. 이 부문장은 2021년 말 차기 행장으로 내정돼 2022년부터 3년 동안 KB국민은행을 이끌었고, 이후 1년 8개월가량 지주에서 핵심 사업을 총괄해 왔다. KB금융그룹의 가장 중요한 계열사를 이끈 경험, 그리고 금융지주에서 그룹 전체의 사업을 총괄해본 경험을 모두 거친 뒤 회장직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KB금융그룹이 비은행 강화 드라이브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문장은 보험·증권·카드 등 비은행 계열사를 직접 이끈 경험이 없다는 점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재임 기간 관할 해외법인에서 금융사고가 잇따라 공시된 것도 약점 가운데 하나다.
◆ 현직 체제에서 세 번 중용 된 '양종희의 남자'
이 부문장을 KB국민은행장으로 발탁한 것은 윤종규 전 회장이었다. 2021년 말 56세에 은행장에 발탁되면서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세 차례 신임은 모두 양 회장 체제에서 나왔다. 2023년 11월 양 회장 취임 직후 허인·이동철 부회장이 동반 사임하며 윤 전 회장 시절 인사들이 물러났지만, 같은 달 30일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이 부문장을 차기 KB국민은행장으로 재추천했다. 2024년 12월에는 양 회장이 당시 은행장이던 그를 지주의 부문장으로 이동시켰고, 지난해 말에는 유임과 함께 신설된 WM·SME부문을 겸직시켜 관할을 넓혔다.
양 회장은 2023년 12월 조직개편에서 부회장 직제를 폐지했다가 1년 뒤 부문장 직위를 신설해 이 부문장을 은행장에서 지주로 불러들였는데, 이를 두고 당시 금융권에서는 부회장제의 사실상 부활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재근 부문장이 지주에서 맡고 있는 관할을 보면 양종희 회장과의 연관성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양 회장은 부회장 시절 글로벌, 디지털·IT, 개인고객, WM·연금·SME 부문을 차례로 맡았다. 이 부문장이 현재 맡고 있는 부문은 글로벌과 WM·SME다. 양 회장이 회장직에 오르기 전 거친 경로를 밟고 있는 셈이다.
◆ 마지막 남은 변수는 지배구조, 개선안 완화 분위기도 레이스에 영향줄까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지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융회사에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소수가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현직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라는 점이 오히려 이너서클이라는 시선을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준비 중인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은 당초 예정보다 발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또한 뜨거운 쟁점이던 ‘3연임 제한’이 지배구조 개선안에서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드라이브가 추진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이번 인선에서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회추위는 다음 달 11일 3인을 대상으로 2차 심층 인터뷰를 실시한 뒤 최종 후보 1인을 확정할 계획이다. 최종 후보는 11월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선임되며 임기는 2029년 11월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