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속 지구촌 물류지도가 바뀌고 있다.
북극에서는 빙하가 녹아 중국 해운사가 세계 최초로 정기 컨테이너 항로를 열었고, 중남미에서는 가뭄으로 파나마운하의 길목이 쪼그라들었다.
빙하가 녹아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컨테이너선. AI 이미지.
21일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중국 해운사 시레전드는 최근 중국 저장성 닝보저우산항에서 컨테이너선을 출항시켜 북극 북동항로를 이용하는 세계 최초의 정기 컨테이너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노선은 러시아 북부 해안을 따라 영국 펠릭스토우, 네덜란드 로테르담, 독일 함부르크 등을 오가면서 10월3일까지 매주 한 차례씩 총 8회 운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기존 항로가 통상 40일이 걸리는 것과 비교해 북극항로는 20~22일 만에 화물을 유럽에 가져갈 수 있다. 운항시간이 최대 절반까지 줄어드는 셈이다.
중국 해운사가 이처럼 북극을 활용한 상업운항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북극 빙하의 급격한 감소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 국립눈얼음데이터센터(NSIDC)에 따르면 2026년 3월 북극 빙하의 겨울철 연간 최대면적은 약 1422만~1429만㎢로 1979년 위성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저치에 근접했다.
영국 사우샘프턴대학교와 국립해양학센터 공동연구진은 최근 2년 사이 북극 빙하의 감소속도가 가팔라졌다고 밝혔다.
이런 북극 얼음감소는 여름철에 한정된다는 제약은 있지만 쇄빙선 없이도 항해가 가능한 구간을 넓혀줬다.
중국은 이 항로를 온도 관리가 중요한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유럽 수출에 활용할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빙상 실크로드'로 부르며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속 지정학적 병목을 우회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바라본다. 다만 이 항로가 개발되면서 늘어난 선박 통행이 북극 생태계에 미칠 환경적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파나마 운하 통행을 기다리는 화물선들의 모습 ⓒ AFP통신=연합뉴스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정반대로 기존의 물길이 쪼그라들고 있다. '슈퍼 엘니뇨'라는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한 가뭄이 파나마 운하의 통항능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파나마운하는 수에즈운하와 달리 바닷물이 아니라 담수(민물)를 활용한다. 파나마 운하는 배를 해발 26m높이의 인공호수인 가툰호까지 계단식 갑문(록)으로 끌어올린 뒤 반대편에서 다시 해수면으로 내려주는 엘리베이터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갑문을 채우고 비우는 데 쓰는 물이 바닷물이 아니라 가툰호와 알라후엘라호에 저장된 빗물(담수)를 쓴다. 문제는 이 담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배 한척이 갑문을 통과할 때마다 약 2억 리터의 담수가 필요한데, 이 물은 갑문이 오르내릴 때마다 바다로 흘러나가 사실상 사라진다. 평소에는 우기 때 호수에 채워진 담수로 손실을 보충하지만 올해 들어 기후위기에 따른 가뭄으로 새로운 물이 보충되지 않고 있다.
파나마운하청(ACP)은 가뭄이 발생하자 운하의 수량을 관리하기 위해 올해 7월부터 통항하는 선박의 최대 허용흘수(선체가 물에 잠기는 깊이)를 단계적으로 낮춰왔다.
허용흘수에 대한 제한이 강화될수록 선박은 화물적재량을 줄여야 해 운송효율이 떨어진다. 선적할 수 있는 화물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여파로 파나마 운하에서 통항을 대기하고 있는 선박은 8월초 기준 113척에 이르렀다. 올해 1월 초 40척과 비교해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 아구스(Argus)에 따르면 대형선박(네오파나막스)용 갑문의 우선통항권 경매가는 378만 달러(한화 약 52억 원)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