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그간 LG그룹 가전 사업의 연장선에서 다뤄졌다. 보스턴다이나믹스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앞세운 현대차나 삼성전자에 비해 LG 로봇 사업의 존재감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엔비디아와 맺은 협약에 로봇 사업에서의 구체적 목표와 일정이 포함되면서, LG그룹의 로봇 사업이 가전 신사업 수준을 넘어 그룹 전체 자원이 집중되는 핵심 사업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구 회장(오른쪽)이 8월13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엔비디아 본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전략적 사업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한 후 함께 미니어처 휴머노이드 로봇을 들고 있는 모습. 미니어처 로봇은 LG가 선물한 것으로 구 회장과 젠슨 황 CEO의 사인이 담겨 있다. ⓒLG
LG그룹은 8월13일(현지시각) 엔비디아와 로보틱스 등 미래 산업 분야 협력을 골자로 하는 '전략적 사업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8월14일 밝혔다.
협약식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의 엔비디아 본사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진행됐다.
권봉석 LG 최고운영책임자(COO), 류재철 LG전자 대표이사,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 현신균 LG CNS 대표, 정수헌 LG사이언스파크 대표, 이홍락 LG AI연구원 공동 연구원장 등 LG그룹 주요 경영진도 참석했다.
구광모 회장은 "양사의 협업이 속도를 내면서 AI 팩토리, 피지컬 AI, 모빌리티 분야에서 함께 할 과제가 명확해졌다"며 "산업을 선도하는 레퍼런스 구축을 통해 AI 확산을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
젠슨 황 CEO는 "피지컬 AI가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기회는 모든 기계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추론하며, 사람과 함께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데 있다"며 "LG와 엔비디아는 수년간 이어온 협력을 바탕으로 LG의 제품 엔지니어링 및 제조 분야 리더십과 엔비디아의 기술을 결합해 로봇, AI 팩토리, 자율주행차의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고 화답했다.
구 회장과 황 CEO의 만남은 올해 6월 초 황 CEO의 방한 이후 2개월 만에 다시 성사된 것이다. 당시 구 회장은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를 방문한 황 CEO와 1시간가량 비공개 회담을 가졌지만 어떤 협의가 오갔는지 구체적 내용을 발표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날 LG그룹이 엔비디아와 체결한 협약에서는 로봇, AI 팩토리, 모빌리티 3대 분야에서 구체적 협력 방향이 잡혔다.
먼저 로봇 분야 협력이 가장 주목된다. LG그룹과 엔비디아는 2027년 1분기에 두 회사의 협력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 로봇은 엔비디아가 개발한 AI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적극 활용한다. 온보드 컴퓨팅과 고도화된 추론·제어를 위한 엔비디아 젯슨 토르가 탑재되고, 엔비디아의 개방형 휴머노이드 파운데이션 모델인 아이작 그루트와 업계 최초의 로보틱스용 풀스택 통합 안전 시스템인 엔비디아 '헤일로스 포 로보틱스'를 기반으로 개발된다.
LG그룹은 이 로봇에 LG전자 엑추에이터, LG이노텍 센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등 주요 계열사의 기술과 역량을 결집한다. 엔비디아의 AI 기술에 LG의 역량을 더해 '원(One) LG' 기반의 차별화된 피지컬 AI 경쟁력을 보여준다는 전략이다.
LG그룹은 올해 안에 휠 베이스 형태의 LG 클로이드를 LG전자 미국 테네시 공장 세탁기 생산라인에 투입해 실제 제조 현장 실증(PoC)도 진행한다.
다음으로 AI 팩토리 분야에서도 엔비디아의 기본 플랫폼에 LG그룹 계열사 역량을 총동원한다.
엔비디아의 AI 팩토리 최적화 플랫폼 DSX에 LG전자의 냉각,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LG CNS와 LG유플러스의 설계·운영 노하우, LS의 전력솔루션 등 LG그룹의 AI 인프라 역량을 합친다.
2027년 상반기에는 엔비디아 베라 루빈을 기반으로 한 LG의 냉각·전력·IT 기술을 적용·검증하기 위한 레퍼런스 사이트를 구축한다. 2028년 상반기에는 충청남도 천안에 80MW(메가와트) 규모로 확대 구축하고, 여기엔 건축 기간을 20% 이상 단축하는 프리패브(Prefab) 모듈형 설계를 적용할 계획을 세웠다. 이 AI 팩토리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고도화 등 피지컬 AI에 중점적으로 활용된다.
마지막으로 LG는 엔비디아와 모빌리티 사업에서의 기회도 모색한다. LG는 엔비디아의 AI 기반 자율주행 기술과 차량용 컴퓨팅 플랫폼을 활용해 기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중심의 전장 사업 역량을 자율주행 영역까지 확대한다.
이를 통해 자율주행 기능과 차량 내 AI 서비스를 통합한 차세대 차량용 솔루션을 글로벌 완성차(OEM) 고객에게 제공하고, 모빌리티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확보해 나갈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