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토박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집을 둘러싸고 '집을 비우고 떠나라' 위협한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정착민의 공격과 이스라엘군의 군사작전 속에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 루카야 하산 아부 레이다(28)가 12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 쿠스라 마을에서 정착민들이 자신의 집을 포위한 뒤 시아버지의 집에서 딸을 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AP통신과 로이터통신은 13일(현지시각) 요르단강 서안지구 나블루스 남쪽 팔레스타인 마을 쿠스라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집을 며칠째 포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주택 3곳을 둘러싸고 천막을 세우고 출입을 막았다. 물과 전기 공급도 끊었다. 집 안에는 어린이 2명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주민 15명이 고립돼 있다. AP통신 역시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닷새 동안 세 채의 팔레스타인 주택을 포위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8월13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나블루스 남쪽 쿠스라 마을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주택을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며칠간 포위한 뒤 쿠스라 마을에 진입했다. 이스라엘군은 불법 정착민 전초기지를 철거하기 위해 이 지역을 폐쇄 군사구역으로 선포했으며, 군사 진지를 설치하기 위해 현지 주민들을 집에서 내보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군도 개입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이스라엘군을 총괄하는 아비 블루트 중부사령부 사령관은 12일 직접 문제의 쿠스라 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만났고, 정착민들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정착민을 몰아내겠다고 했던 이스라엘군이 오히려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집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이스라엘군은 강제 퇴거가 아니라 안전을 위한 대피였다고 주장했다. 정착민에게 둘러싸인 집에서, 정작 떠나야 했던 사람은 포위한 이들이 아니라 그 집에 살던 가족이었다.
지난 7월 이스라엘 정착민들과의 충돌로 숨진 팔레스타인인 파루크 라마단의 어린 친척들이 8월 11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나블루스 남서쪽 텔 마을에서 그의 집이 철거된 뒤 현장에서 슬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집을 에워싸고 주민들을 고립시키는 정착민들의 폭력은 쿠스라에서 처음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지난 7월에는 인근 잘루드에서도 팔레스타인 가족이 정착민들의 공격과 포위에 시달리다 결국 집을 떠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디언은 12일 이 가족 역시 집 주변에 정착민들이 천막을 치고 이동을 막으면서 사실상 고립됐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주민들에게 이스라엘 정착민 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다. 집과 차량에 불을 지르고, 올리브나무를 훼손하고,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공격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8월13일 나블루스 남쪽에 있는 점령된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쿠스라 마을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제는 정착민 폭력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예시 딘(Yesh Din)이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 경찰이 2005~2025년 팔레스타인 주민을 상대로 한 '이념적 범죄'로 수사한 사건 가운데 93.6%가 기소 없이 종결됐다. 유죄 판결로 이어진 사건은 3%에 그쳤다. 예시 딘은 조사 대상 사건의 82%에서 경찰의 수사 실패가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폭력이 반복되는 사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터전을 떠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지난 7월10일 보고서에서 올해 들어 정착민 공격과 이스라엘 당국의 건축허가 미취득 주택 철거로 서안지구에서 3200명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이 강제이주를 겪었다고 밝혔다. 하루 평균 17명꼴로, 이전 3년의 하루 평균보다 두 배 빠른 속도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2월19일 보고서에서 이스라엘 당국의 공격과 강제이주가 팔레스타인 주민의 영구적 축출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인종청소(ethnic cleansing)’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이번 쿠스라 사건에서는 미국에서도 이례적으로 강한 비판이 나왔다.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는 13일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했다. AP통신은 이 같은 표현이 미국 당국자들이 이스라엘 정착민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로는 이례적으로 강한 것이라며, 이스라엘 정착촌 정책을 강하게 지지해온 트럼프 행정부에서 나온 보기 드문 비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