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이 4년 전 '게임 체인저'를 선언하며 꺼내든 '오카도 프로젝트'가 첫 검증 무대에 올랐다.
롯데쇼핑은 2022년 영국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와 손잡고 2030년까지 1조 원을 투자해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6개의 고객풀필먼트센터(CFC)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수천 대의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운영하는 최첨단 자동화 물류센터를 앞세워 취약했던 온라인 식료품 경쟁력을 단숨에 끌어올리겠다는 승부수다.
하지만 2026년 현재 롯데쇼핑이 풀어야 할 과제는 기술이 아니라 실적이다. 롯데쇼핑은 백화점이 떠받치는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적자가 이어진 롯데온과 성장 정체에 빠진 롯데마트를 다시 성장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부산 CFC의 진짜 시험대 역시 자동화 수준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주문을 확보해 물량을 채우고 이를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다. 결국 오카도 프로젝트의 성패는 로봇보다 주문 물량과 수익성이 가를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쇼핑은 부산 강서구 미음동에 오카도 기반 AI 자동화 물류센터인 '제타 스마트센터 부산'을 구축하고 영남권 400만 세대를 대상으로 새벽·주간·야간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국 6개 CFC 구축 계획의 첫 거점이다. 사진은 롯데마트 제타 스마트센터 부산 전경. ⓒ롯데쇼핑
10일 롯데쇼핑에 따르면 제타 스마트센터 부산이 영남권 400만 세대를 대상으로 온라인 식료품 사업 확대에 나섰다. 롯데쇼핑은 지난 7일 부산 강서구 국제산업물류도시에 오카도 기반 CFC인 '제타 스마트센터 부산'을 가동하며 영남권 온라인 장보기 수요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오카도 프로젝트는 롯데그룹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투자다. 롯데쇼핑은 2030년까지 1조 원을 투입해 영남권을 시작으로 전국 6개 지역에 고객풀필먼트센터(CFC)를 구축하기로 했다. 사업 규모가 큰 만큼 투자 부담도 적지 않다.
실제로 오카도 프로젝트 비용은 이미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롯데마트·슈퍼 사업부는 지난해 오카도 사업 이관 비용 등의 영향으로 연간 7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국내 사업 적자만 566억 원에 달했다. 롯데쇼핑 역시 당시 실적 설명에서 오카도 프로젝트 관련 비용 증가를 수익성 악화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다만 물류 투자는 이제 유통기업의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다. 자체 구축이든 외부 협업이든 안정적 물류망 없이는 온라인 장보기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팡은 대규모 물류망을 내재화했고, SSG닷컴은 CJ대한통운과 협업하며 배송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롯데쇼핑의 사업 구조 개선과도 직결된다. 지난해 롯데쇼핑의 영업이익은 4731억 원이었지만 백화점 영업이익은 5179억 원에 달했다. 백화점이 사실상 다른 사업 부문의 부진을 메운 셈이다. 롯데온은 출범 이후 적자를 이어왔고 롯데마트 역시 성장 정체에 직면해 있다. 오카도 프로젝트가 충분한 주문을 확보해 수익성을 입증한다면 온라인 사업의 체질 개선은 물론 백화점 의존도를 낮추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오카도 프로젝트의 성패는 결국 수익성이 좌우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주문 물량 확보가 필수적이다.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자동화 물류센터는 주문이 늘수록 효율이 높아지는 구조인 만큼 가동률이 수익성을 좌우한다. 초기 투자비뿐 아니라 설비 유지·보수와 시스템 운영 비용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주문이 뒷받침돼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실제 해외에서도 오카도 프로젝트의 성패는 기술력이 아니라 주문 규모가 갈랐다. 미국 크로거와 소베이스 등 일부 북미 프로젝트는 첨단 자동화 설비를 구축했지만 기대만큼의 주문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사업이 축소되거나 물류센터가 폐쇄됐다. 자동화 기술 자체보다 충분한 수요를 확보해 가동률을 높일 수 있느냐가 수익성을 결정한 셈이다.
쿠팡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쿠팡은 수년간 전국 물류망과 자동화 설비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적자를 감수했다. 하지만 로켓배송 이용 고객이 늘고 주문 밀도가 높아지면서 물류센터 가동률이 상승했고, 이후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며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롯데쇼핑이 쿠팡처럼 장기간 적자를 감수하며 물량이 쌓이기를 기다릴 여유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롯데그룹은 롯데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신사업 투자와 주요 계열사의 실적 부진 대응 등 자금이 필요한 사업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CFC가 기대만큼의 주문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대규모 자동화 투자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롯데쇼핑은 후발주자라는 부담도 안고 있다. 선발 업체가 이미 고객과 주문 데이터를 확보하고 배송 네트워크를 고도화한 상황에서 신규 물류 거점을 마련하더라도 곧바로 경쟁 우위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실제로 부산 CFC가 공략하는 영남권은 이미 경쟁사들의 물류 투자와 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한 지역이다. 쿠팡은 대구를 영남권 물류 거점으로 육성하며 로켓배송과 로켓프레시 서비스를 확대해 왔다. 2024년에는 전국 물류 인프라에 3조 원을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2027년까지 전국민을 '쿠세권'으로 편입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영남권 역시 주요 투자 지역으로 꼽힌다.
신세계그룹도 영남권 공략에 공을 들여왔다. SSG닷컴은 CJ대한통운과 협업해 부산·대구·울산 등으로 새벽배송 권역을 넓히고 있다. 여기에 배달의민족 B마트와 편의점 기반 퀵커머스 서비스까지 가세하면서 영남권 온라인 장보기 시장은 대형마트와 이커머스, 배달 플랫폼이 동시에 경쟁하는 격전지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쇼핑은 부산 CFC의 차별점으로 오랜 오프라인 점포 운영을 통해 축적한 신선식품 소싱 역량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이는 경쟁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략으로 보인다. SSG닷컴 역시 이마트의 상품 소싱 역량과 신선식품 경쟁력을 앞세워 새벽배송 사업을 확대해 왔고, 쿠팡도 로켓프레시를 통해 신선식품 고객층을 꾸준히 확보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