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일반적 상법 개정을 하고 그 외에도 주주들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지배경영권 남용과 부당 결정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제도들을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처리하겠다.”
2024년 11월 당시 야당 당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이재명 정부는 세 차례의 상법 개정을 거치며 한국 자본시장의 주주권 보호 단계를 한층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최근 같은 정부에서 이와 뚜렷하게 반대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 제한 강행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7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주의 권리를 찾아주겠다던 정부가, 이번에는 국가가 나서서 주주의 '선택할 권리'를 빼앗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 상한을 법에 못 박는다는 것은 명확한 의미를 지닌다. 주주들이 특정 인물을 가장 훌륭한 적임자로 판단하더라도, 국가가 그 선택지를 미리 지워버리겠다는 뜻이다.
상법이 이사 선임권을 주주총회에 둔 근본적인 이유는 회사의 주인이 주인의 역할을 다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지난 상법 개정들이 겨냥했던 지점 역시 정확히 그곳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지금의 3연임 제한 제도는 방향타를 잃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 기이한 것은 정책의 내적 모순이다. 현재 알려진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안에는 연임 시 '의결권 있는 주식 3분의 2 이상의 찬성(특별결의)'을 받도록 하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다. 문턱을 대폭 높이되 최종 판단은 주주에게 맡기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주주가 3분의2 이상의 압도적 찬성이 있을 때 회장에 선임될 수 있도록 설계해 놓고 정작 주주들이 찬성인지 반대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후보 풀 자체에 제한을 걸어버린다면, 특별결의 제도의 도입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물론 반론은 존재한다. 은행은 예금자의 돈을 다루고 정부의 인가를 받아 영위하는 특수한 업종이므로 일반 상장사와 동일한 잣대를 댈 수 없다는 논리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 반론이 힘을 얻으려면 해당 규제가 목적 달성에 '효과적'이라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앞서 문제로 지목한 것은 "소수가 회장과 은행장을 돌아가며 10년, 20년씩 해먹는" 구조적 병폐였다. 즉, 문제의 핵심은 특정인이 '회장직' 하나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권력 집단이 몇 개의 요직을 돌려가며 장기 집권하는 ‘이너서클’에 있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는 처방은 오직 '회장 임기'만을 일괄적으로 자르는 데 그친다. 계열사 사장 3년, 은행장 3년을 거쳐 지주 회장에 올라 6년을 채운다면 도합 12년이다. 규제는 이 기형적 권력의 순환 구조를 전혀 타격하지 못한다.
1696년 잉글랜드는 재정 확보를 위해 이른바 '창문세'를 도입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고 싶었으나 소득을 직접 들여다보는 것은 반발이 심하다 보니, 부와 상관관계가 있어 보이면서도 밖에서 '세기 매우 쉬운' 창문의 개수를 과세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려 멀쩡한 창문을 벽돌로 틀어막았다. 부자들은 여전히 부자였고, 국가는 기대했던 세수를 얻지 못했으며, 평범한 사람들의 집에서는 빛과 공기가 사라졌다. 150년 뒤 이 세금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 내세워진 명분은 조세가 아닌 시민의 '보건'이었다.
연임 횟수는 세기 쉽다. 반면 권력을 독점하는 이너서클이라는 보이지 않는 문제를 파헤치고 견제 장치를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렵고 복잡하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세기 쉬운 것을 세는 일'은 언제나 유혹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창문세의 교훈처럼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권력 독점의 본질이 이너서클에 있다면, 과녁은 마땅히 그 이너서클을 직접 겨눠야 한다. 회장 후보를 추천하는 사외이사에 가서 닿아야 하고, 금융지주 내부의 보이지 않는 참호에 닿아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CEO를 선택할 권한을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돌려 줘야 한다. 회사에,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CEO는 주주가 직접 내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주주들의 눈을 가리고 눈에 보이는 숫자만 통제하려는 방식으로는 금융 지배구조의 본질에 결코 닿을 수 없다. 창문 개수를 세느라 정작 시장의 빛과 공기를 차단하고 질식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