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관투자자가 한미약품의 중국법인 북경한미약품유한공사의 매출채권 미회수 문제를 지적하며 주요 거래처인 룬메이캉과의 거래 및 법인 지배구조에 대한 특별감사를 한미약품에 요청했다.
특히 북경한미 동사장(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코리그룹 회장)이 룬메이캉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가능성을 제기하는 모습이다. 임종윤 전 사장은 한미약품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장남이다.
이에 한미약품은 18일 입장문을 내고, 매출채권 회수가 이뤄질 때까지 신규 거래를 중단하고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조직을 구성하는 등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빠른 입장 표명은 회사도 이번 사안을 단순 매출채권 문제가 아닌, 해외법인 관리와 내부통제 문제로 보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황상연 한미약품 대표이사에게 주어진 과제도 단순한 매출채권 회수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북경한미의 거래처 선정과 외상거래 조건, 채권관리 및 계약 승인 절차를 점검하고 해외 자회사에 대한 본사의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약품이 약속한 ‘근본적인 재발 방지’가 채권관리 강화에 그치지 않고 오너일가의 이해관계가 얽힌 거래와 의사결정 구조를 손보는 데까지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황상연 한미약품 대표이사 사장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매출 40% 룬메이캉에 집중, 라이프자산운용 특별감사 요구
2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라이프자산운용은 17일 한미약품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에 주주서한을 보내 북경한미와 중국 현지 의약품 유통사 룬메이캉(Beijing Medi'care) 사이의 거래 및 북경한미 지배구조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구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감사위원회가 직접 특별감사를 수행하고 10월30일까지 그 결과를 주주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사회에는 감사에 필요한 자료와 인력, 예산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주 쪽에서 문제를 제기한 배경에는 북경한미와 룬메이캉의 지배구조가 있다.
북경한미 동사장은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맡고 있다. 임 전 사장은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이 종식 수순에 접어든 2025년 2월 북경한미 동사장에 선임됐다. 중국 회사에서 동사장은 일반적으로 회사의 내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의 수장과 법정대표인을 겸임한다.
그런데 임 전 사장은 북경한미의 주요 거래처인 룬메이캉과 연결돼 있다. 룬메이캉 지분 100%를 보유한 오브맘홍콩은 코리그룹의 중심 회사인 코리홍콩과 임 전 사장을 비롯한 한미약품 오너일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임 전 사장은 코리홍콩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북경한미 경영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임 전 사장이 거래 상대방인 룬메이캉에도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특수관계자와 거래한다는 사실 자체가 곧 부당거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래조건과 계약 승인, 판매대금 회수 과정에서 충분한 견제와 내부통제가 작동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라이프자산운용도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북경한미와 룬메이캉 양쪽의 의사결정에 한 사람이 관여할 수 있는 구조에서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판매대금 회수가 지연되는 동안 계약조건과 승인절차가 적절하게 관리됐는지 독립적인 감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 ⓒ 연합뉴스
북경한미가 2025년 룬메이캉을 상대로 올린 매출액은 1543억 원이다. 같은 해 북경한미 전체 매출 4024억 원의 약 38%에 해당한다.
그런데 라이프자산운용이 제시한 자료 등에 따르면 북경한미의 룬메이캉 관련 매출채권은 2023년 말 351억 원에서 2024년 말 605억 원, 2025년 말 1254억 원으로 증가했다. 2025년 기준으로 보면 1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다. 특정 거래처에 대한 매출채권 잔액이 빠르게 늘어난 만큼 실제 결제조건과 회수기간, 장기연체 여부를 점검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장기 미회수 채권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미약품이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북경한미의 전체 매출채권은 2025년 말 약 9억 위안(1924억 원)에서 약 6억7천만 위안(1432억 원)으로 감소했다. 반면 3개월 초과 미회수 채권은 2025년 말 약 3억2천만 위안(684억 원)에서 2월 9천만 위안(192억 원)까지 줄었다가 공개 시점에 약 4억3천만 위안(919억 원)으로 다시 늘었다. 이 미회수 채권 중 상당 부분이 룬메이캉에서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7월부터 주주들을 중심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미약품은 7월29일 북경한미의 매출채권 관리체계를 강화하고 장기채권 증가 원인을 분석해 회수계획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한미약품은 북경한미 매출채권이 연중 증가했다가 연초에 회수되는 패턴이 반복돼 왔고 장기채권 역시 상당 부분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3개월 이상 회수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전액 회수불능이나 손실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밝혔다.
실적에 대해 한미약품은 중국 정부의 의약품 집중구매제도(VBP) 영향이 심화되는 등 현지 시장환경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VBP는 중국 정부가 공공 의료기관의 의약품 수요를 모아 대량 구매함으로써 가격을 낮추는 제도다.
한편 코리그룹도 8월 입장문을 내고 매출채권 증가는 경영 부실이 아닌, 중국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다. 매출채권 증가를 거래구조의 문제로 추정하는 데 선을 긋는 모습이다.
◆ CRO 신설한 황상연 대표, 거래구조까지 손볼까
황상연 대표에게는 기존 매출채권을 최대한 빨리 회수하고,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북경한미의 거래와 채권관리 전반의 기준을 정비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회사가 밝힌 ‘근본적인 재발 방지’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경한미의 주요 거래처가 오너일가가 사실상 지배하는 회사이고 그 거래처에 대한 매출채권이 크게 늘어난 만큼, 시장과 주주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거래조건과 승인·감독 절차가 적절했는지를 투명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미약품은 18일 라이프자산운용의 주주서한에 대한 입장문에서 “이번 주주서한에서 제안된 사항은 내부적으로 이미 강도 높게 추진 중인 내용”이라면서 “전폭적으로 주주제안을 수용해 미흡한 부분을 확고히 개선함으로써 주주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보다 투명하고 선진적인 내부 통제 및 관리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한미약품이 주주제안의 취지를 수용해, 매출채권 관리 개선을 넘어 이해충돌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는 감독체계 및 거래구조 개선에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신설하는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조직의 권한 범위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