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주 대표는 '해외시장 확대'를 구상 중이다. 올해 1월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2026년은 중장기 성장을 위한 전략적 로드맵 구축을 완료하고 본격 실행을 시작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시장 확대(International Market),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th), 통합적 접근(Integrated Approach)을 축으로 한 '3I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 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성장성이 높은 K뷰티 브랜드 인수를 검토하는 한편, 비디비치와 연작, 어뮤즈 등 자체 브랜드의 글로벌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김 대표 체제의 진짜 시험대는 새로운 브랜드를 하나 더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 하나의 성공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를 꾸준히 발굴·육성하고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장기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어뮤즈를 비롯한 자체 K뷰티 브랜드를 앞세워 글로벌 브랜드 포트폴리오 확대에 나서고 있다. 김덕주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 ⓒ신세계인터내셔날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국내 K뷰티 브랜드 APLB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자주(JAJU)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K뷰티 포트폴리오 확대에 본격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어뮤즈에 이은 차기 성장 브랜드를 확보해 글로벌 사업을 키우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최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를 매각하며 940억 원가량의 투자 여력을 확보했다. 확보한 자금은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규 성장 동력 확보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는 성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에서 확보한 자금을 성장성이 높은 K뷰티로 재배분하는 자본 배분 전략으로 해석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K뷰티에 힘을 싣는 것은 화장품 사업이 이미 회사의 핵심 성장 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12년 비디비치를 인수하며 패션업계에서 가장 먼저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뒤로 연작과 저스트 에즈 아이엠 등을 자체 육성하고, 스위스퍼펙션과 어뮤즈 등을 확보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꾸준한 투자에 힘입어 뷰티 사업은 신세계인터내셔날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사업으로 성장했다. 올해 1분기 뷰티(코스메틱) 부문 매출은 1240억 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기존 최고치였던 지난해 2분기 1156억 원을 7.3% 웃돌았고,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서도 9.7% 증가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브랜드를 인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제품 개발과 브랜딩, 글로벌 마케팅, 국가별 현지화 전략을 결합해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강점이다. 대표 사례가 2024년 인수한 어뮤즈다.
어뮤즈는 인수 2년 만에 지난해 매출 602억 원, 영업이익 25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 부문 매출의 13% 이상을 책임지는 핵심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사업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현재 27개국에 진출한 어뮤즈는 올해 프랑스를 유럽 공략의 거점으로 삼고 3월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샹젤리제점에서 단독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데 이어 오스만 본점과 샹젤리제점 정규 매장 입점을 추진했다. 이어 5월 태국 센트럴월드에 정식 매장을 열고, 6월에는 캐나다 홀트 렌프루와 협업하는 등 국가별 유통망을 넓히고 현지 맞춤형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더마 스킨케어 브랜드 '듀어썸'의 브랜드 자산을 인수하며 색조 중심 브랜드에서 스킨케어까지 아우르는 종합 뷰티 브랜드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김 대표는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조직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하며 뷰티 부문에서는 연작· 비디비치·어뮤즈를 앞세워 해외 유통망과 현지 마케팅을 확대하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K뷰티 브랜드에 대한 인수와 전략적 투자를 병행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는 단순히 브랜드 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 K뷰티 브랜드를 글로벌 성장 축으로 육성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APLB 투자 검토 역시 성장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를 꾸준히 확보하고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결국 김 대표의 시험대는 '다음 어뮤즈'를 찾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자체 K뷰티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있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브랜드를 꾸준히 확보해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하고, 여러 브랜드가 안정적으로 실적을 내는 구조를 갖춰야 지속적인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IR협의회에서도 이러한 브랜드 포트폴리오 구축이 중장기 성장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선영 기업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은 단기적 구조조정을 넘어 실적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높이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성장 브랜드 중심의 포트폴리오 확대는 2030년 매출 2조 원 달성을 목표로 하는 기업가치 제고계획의 외형 성장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전략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한 기업으로는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 꼽힌다. 로레알은 전 세계 150개국에서 37개 글로벌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연매출 10억 유로(약 1조6천억 원) 이상을 올리는 브랜드만 9개를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은 인수한 브랜드를 연구개발(R&D), 글로벌 유통망, 현지화 마케팅과 결합해 세계적 브랜드로 육성한 사례다. 랑콤과 메이블린, 키엘, 비오템, 라로슈포제, 3CE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국가와 가격대, 소비층별로 다양한 브랜드가 고르게 실적을 내며 특정 브랜드의 부진을 다른 브랜드가 보완하는 포트폴리오 구조를 구축한 것이 로레알 경쟁력의 핵심이다.
다만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로레알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 포트폴리오 기업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는 어뮤즈와 비디비치, 연작, 스위스퍼펙션 등 자체 브랜드를 확보하고 APLB 인수도 검토하고 있지만 실적의 중심은 여전히 수입 코스메틱과 해외 패션이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수입 코스메틱과 해외 패션이 실적을 견인하고 있으며 제조 코스메틱은 회복 초기 단계"라고 분석했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도 고마진인 수입 코스메틱 성장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제조 코스메틱은 적자 폭을 줄이며 회복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했다.
다만 자체 브랜드의 성장 여력은 충분해 보인다. 증권업계에서는 어뮤즈를 시작으로 연작과 비디비치, 향후 인수 브랜드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안착할 경우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수입 브랜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자체 브랜드가 실적을 견인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승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제조 코스메틱 매출은 2분기 440억 원으로 1분기보다는 성장했지만 아직은 회복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다만 제조 코스메틱은 해외 법인 손익 개선과 낮은 기저효과를 바탕으로 하반기부터 성장세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