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올라갈수록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있다. 땡볕 아래 논과 밭을 오가고, 찜통 같은 축사 안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전날 전국 최고 기온인 39.3도를 기록한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한 딸기 농가에서 7월27일 라오스 계절 노동자들이 파라솔 아래서 작업하고 있다. 이날 오후 1시20분 기준 밀양시 내이동 기온은 38도까지 치솟았고, 밀양에는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됐다. ⓒ연합뉴스
폭염 속 이주노동자 사망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5일 전남 해남에서 밭일을 하던 30대 태국 국적 노동자가 어지럼증을 호소한 뒤 숙소로 이동하던 중 쓰러져 숨졌다. 지난 11일에는 충남 홍성의 한 돼지농장 축사에서 30대 네팔 국적 노동자가 쓰러진 채 발견됐고, 지난 4일에는 충북 괴산에서 야산 풀베기 작업을 하던 20대 베트남 국적 노동자가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7월14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의 한 고랭지 무밭에서 농민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솎아내기와 풀 뽑기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2025년을 기준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정부가 운영하는 외국인력 도입 제도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비전문 외국인력만 30만 명을 웃돌며 제조업과 농축산업 등 인력 부족 현장을 메우고 있다. 이들이 없으면 공장도, 농장도 돌아가지 못한다.
국내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숨지는 이주노동자는 매년 100명 안팎에 이른다. 특히 농축산업 종사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 야외 작업과 고온 환경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폭염 위험이 더욱 크다.
농촌을 지탱하는 필수 인력, 가장 뜨거운 곳에 놓인 노동자들
전남광주 전역에 폭염특보가 이어지고 있는 7월27일 오전 나주시 봉황면 한 과수원에서 계절노동자들이 더위를 참아내며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날 한국의 밥상은 이주노동자의 손길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농촌의 일손이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농번기마다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는 이주노동자는 이제 농축산업을 떠받치는 필수 인력이 됐다. 농촌의 외국인력은 고용허가제를 통한 장기 취업자뿐 아니라 농번기 일손 부족을 메우는 계절노동자까지 확대되고 있다.
정부의 고용허가제(E-9)를 통해 입국한 비전문 외국인력도 제조업뿐 아니라 농축산업에 투입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발표 기준 2026년 고용허가제 신규 규모는 총 1만2630명이며, 이 가운데 농축산업 배정 인원은 1906명이다.
농축산업의 필수 인력이 된 이들의 노동 환경은 폭염에 취약하다. 밭일과 수확, 제초 작업 대부분은 땡볕 아래에서 이뤄진다. 한낮의 작업 현장은 기상청이 발표하는 숫자보다 훨씬 뜨겁다. 땡볕 아래 일하는 노동자들은 고온과 직사광선을 고스란히 견뎌야 하고, 비닐하우스는 열과 습기가 갇힌 찜통으로, 축사는 환기가 막힌 고온 공간으로 변한다. 작물 수확 시기나 가축 관리 특성상 작업을 중단하거나 미루기 어려운 경우도 많아 폭염 속에서도 일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폭염은 기존 노동 불평등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7월27일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경북 경산시 한 밭에서 작업자가 냉수를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들이 폭염 위험에 더 취약한 이유는 더운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권단체와 노동계는 언어 장벽과 고용주 의존 구조 등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건강 이상을 느껴도 충분한 휴식을 요구하거나 작업 중단을 요청하기 어려운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주노동자는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주거 환경, 임금 체불 등 취약한 노동 조건에 놓여 있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 특히 농축산업 현장에서는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와 작업 환경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노동자가 위험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도 폭염이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특히 야외 노동자와 저임금·불안정 고용 노동자는 폭염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도 농업 이주노동자는 고용주 의존 구조 탓에 폭염 속에서 작업 중단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기준은 있지만, 멈추지 못하는 일터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7월13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도권기상청에서 예보관이 체감온도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도 폭염 기간 사업주에게 작업시간 조정과 휴식 보장, 휴게시설 마련 등 온열질환 예방 조치를 시행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체감온도에 따른 폭염 대응도 다르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면 작업시간 조정 또는 옥외 작업 단축, 35도 이상이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옥외 작업 중지, 38도 이상이면 긴급 작업을 제외한 옥외 작업 전면 중지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취약 사업장 점검과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다국어 안전자료 제공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기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축산업은 소규모 사업장이 많고,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와 작업 환경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7월29일 서울 종로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건설현장 실내공사 고열·폭염대책 시행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건설노동자가 분진복과 방독면,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체감온도는 기상청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일반 기온과 달라 현장에서 즉각 판단하기 어렵고, 폭염 기준에 따른 작업 중단과 휴식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폭염은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노동 환경의 격차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폭염 속에서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일은 특정 집단만을 위한 보호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노동 안전망을 강화하는 일이다. 기후재난이 일상이 되는 시대, 가장 뜨겁고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는 결국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폭염 속에서도 우리 사회를 지키는 이들. 1) 경산에 폭염 경보가 발효 중인 7월13일 경북 경산시 자원회수시설에 쿨링포그(안개형 냉각수)가 가동되는 가운데 작업자들이 재활용품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왼쪽 위부터) 2)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7월29일 오전 전남광주 광양시 광양제철소 근로자가 고온의 쇳물이 담겨 있는 용광로에서 각목으로 불순물을 제거하고 있다. 3)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7월28일 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서 작업자가 에어컨 실외기 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4) 대구에 폭염경보가 발효 중인 7월15일 대구 동구 삼성자동차해체재활용산업 폐차장에서 동부소방서 소속 119구조대원이 교통사고 현장 대응능력 향상을 위한 특별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5) 건설현장 실내공사 노동자들이 7월29일 서울 종로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건설현장 실내공사 고열·폭염대책 시행 촉구 기자회견에서 분진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분진이 날리는 현장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