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채 안 된 이 강철의 노동자가 한국 제조업의 거대한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아틀라스의 그림자를 가장 먼저 인식한 곳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다. 현대차 노조는 7월13일 오후 1시30분부터 부분파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장의 관심은 실제 파업보다, 파업 전 노사가 의견을 좁혔다고 밝힌 '완전월급제'에 쏠려 있다.
근무시간에 관계없이 일정한 임금을 받는 완전월급제는 시급에 기반한 현대차의 현행 임금 체계를 완전히 뒤바꾸는 것이다. 노조가 별도 요구안에 완전월급제를 못 박은 것도 이례적이지만, 현대차가 이 요구에 전향적 태도를 취했다는 것에 업계는 더 놀라고 있다.
왼쪽 사진은 올해 1월6일 공개된 아틀라스가 손을 드는 모습. 오른쪽 5월13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에서 열린 올해 임금협상 투쟁 출정식에서 이종철 노조 지부장이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현대차 노조 소식지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7월8일 15차 교섭에서 노조 요구안 5번 항목인 완전월급제 시행과 관련해 '의견일치'를 봤다. 바로 시행된다는 뜻은 아니고 노사가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연구용역을 진행한 뒤 2027년 교섭에서 본격 협의하겠다는 것이다.
노조의 월급제 요구 역사는 오래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월급제는 노사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가도 뚜렷한 성과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의제였다. 2013년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으로 밤샘 근무가 사실상 사라졌을 때 월급제에 준하는 변화가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그렇다고 시급에 기반한 임금 체계가 바뀐 건 아니었다.
2021년 완전월급제를 공약으로 한 노조 집행부가 당선된 이후로도 딱히 이렇다 할 소식이 없어 완전월급제는 현대차 노조의 먼지 쌓인 숙원 사업으로 잊혀져가는 참이었다.
그러다가 노조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사건이 올해 초 있었다. 1월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현대차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했다. 현대차는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의 로봇 생산 체제를 갖추고 미국 생산 현장부터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조를 불안에 떨게 한 건 현대차의 변화가 로봇 한 대에 그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틀라스의 공개 다음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직접 주재한 경영진 비공개 회의에서 100% 무인공장의 시행 계획이 논의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름하여 'DF247' 프로젝트였다. 24일 7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다크팩토리(DF)라는 뜻이다.
현대차가 그리는 미래 공장에 사람이 없었다. 노조에 이보다 선명한 위협은 없었다. 보름 뒤인 1월22일, 현대차 노조는 성명을 내고 "노사합의 없이는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선언했다. 1월29일 소식지에서도 노조는 "사측은 생산현장에서 사람을 배제하고, 오로지 AI 기반 로봇만으로 운영할 수 있는 꿈의 공장을 구현하려 한다"며 "판을 엎겠다"고 했다. 인간 노조는 로봇을 상대로 짐짓 으름장을 놓았다. 그들이 야간수당도 특근수당도 필요치 않은 존재라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노조는 수년간 묻혀 있던 의제인 완전월급제를 다시 황급히 꺼냈다. 올해 4월 노조가 간부 562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시급제를 폐지하고 완전월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이 4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3년 전 조사에서는 26%의 지지를 얻던 것이 아틀라스와 다크팩토리의 현실화 가능성을 본 이후 가장 시급한 의제로 부상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것은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회사 입장에서 로봇 투입 이전에 노조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비용으로 완전월급제를 지불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 인력 구조도 회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현대차 노조원 규모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4년 동안 20.4%가 줄었고, 2030년까지 해마다 정년으로 현장을 떠나는 노동자 수가 수천 명에 달할 것이라는 조사도 있다. 회사로서는 고정급 전환의 비용이 시간이 갈수록 가벼워지는 구조다.
문제는 현대차의 임금 모델이 미치는 파급 효과다. 현대차 임금 체계는 기아와 모비스 등 계열사를 거쳐 완성차 업계 전반, 나아가 조선과 철강 등 대형 제조 사업장의 교섭 기준으로 작동해왔다. 현대차 노사의 합의가 '노동시간=임금'이라는 한국 제조업의 법칙을 뒤바꾸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