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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차기작 '오디세이'​가 다음 달인 8월5일 한국에서 개봉되는 가운데, 영화 캐스팅을 둘러싼 공방은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일부 우익 성향 관객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는 헬레네 역에 케냐·멕시코계 배우 루피타 뇽오가 캐스팅된 것을 두고 '원작을 훼손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완벽한 고증에 기반한 영화만이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허프 생각]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흑인 여배우 캐스팅 논란 : 그리스인 배우 없는 건 왜 그냥 넘어가나
여유롭게 웃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왼쪽)과 배우 루피타 뇽오. AI 이미지.

13일(현지시각) 영국 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놀란 감독은 최근 영국 텔레그래프와 나눈 인터뷰에서 이번 캐스팅 논란에 대해 담담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영화를 보기 전에 벌어지는 논쟁은 언제나 무의미하다"며 "그 이야기를 하는 누구도 아직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논란은 지난 5월 루피타 뇽오의 캐스팅이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원작 속 헬레네는 백인으로 묘사되는데 흑인 배우가 연기한다는 이유로 온라인에서는 "미스 캐스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튜브에 공개된 최종 예고편은 '싫어요' 약 60만 개를 기록했고, 뇽오가 등장하는 장면은 캡처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다.

논란은 정치적 영역으로까지 번졌다.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역시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뇽오의 캐스팅을 집중 공격했다. 심지어 머스크는 이번 캐스팅을 두고 '서구 사회를 전복하려는 좌파의 문화 전략'이라는 한 이용자의 게시글에 '맞다'고 답을 달기도 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영화 한 편의 캐스팅이 어느새 문화전쟁의 전쟁터가 된 셈이다.

그러나 놀란 감독은 이러한 반응이 낯설지 않다는 듯 의연했다. 그는 "이런 일은 늘 따라오는 것"이라며 과거 배트맨 3부작을 연출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배트맨 비긴즈'를 맡았을 때도 배트맨은 이미 65년 가까이 사랑받아 온 캐릭터였고, 사람들은 그 상징성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10년 동안 시리즈를 만들며 깨달은 것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창작자가 해야 할 일은 원작을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존중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그의 말은 이미 한 차례 증명된 바 있다. 2008년 개봉한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조커를 연기한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도 여론은 냉담했다. 당시 히스 레저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 '기사 윌리엄'(2001), '브로크백 마운틴'(2005) 등을 통해 부드럽고 로맨틱한 이미지가 강한 배우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배트맨 최고의 숙적을 연기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이제 영화사를 대표하는 빌런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으며, 오히려 기존의 편견이 얼마나 허망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번 논란이 '고증'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고증에는 선택적이라는 점이다. 원작의 헬레네는 반드시 백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정작 주연 배우 대부분이 그리스인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고대 그리스어가 아니라 현대 미국식 영어로 대화하는 것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배우들이 착용한 의상과 소품 또한 실제 고대 그리스의 복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이 역시 전혀 논쟁거리가 되지 않고 있다. 

[허프 생각]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흑인 여배우 캐스팅 논란 : 그리스인 배우 없는 건 왜 그냥 넘어가나
시대 고증에 전혀 맞지 않는 영화 '오디세이'의 의상. ⓒ유니버설 픽처스
[허프 생각]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흑인 여배우 캐스팅 논란 : 그리스인 배우 없는 건 왜 그냥 넘어가나
영화 '오디세이' 예고편 속 배우 톰 홀랜드는 'Father'(아버지) 대신 'Dad'(아빠)라고 대사를 한다. ⓒ유니버설 픽처스

만약 완벽한 역사적 재현이 절대적인 기준이라면 이러한 요소들 역시 모두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고증'은 일관된 원칙이라기보다 자신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특정 요소에만 적용되는 선택적 잣대가 된 셈이다.

애초에 놀란의 '오디세이'​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 작품은 호메로스의 서사를 현대의 영화 언어로 다시 해석한 창작물이다. 원작을 문자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관객에게 새로운 감각으로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면, 모든 선택은 그 의도 안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실제로 최근 진행된 시사회에서도 평단의 반응은 매우 뜨겁다. 수많은 평론가들은 '오디세이'​를 놀란 감독의 대표작이며, '벤허'(1959)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처럼 시대극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될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최종적인 평가는 개봉 이후 관객의 몫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선입견이 먼저 소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술은 원본을 복사하는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셰익스피어는 수백 번 재해석됐고, 그리스 신화 역시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다시 태어났다. 고전은 오히려 시대와 호흡하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기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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