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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진료실에서 갱년기 여성들을 만나면 가장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다.

[갱년기라는 터닝포인트] ④ 갱년기와 우울감, 성격이 변한 걸까?
갱년기 우울감은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지만, 이는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사진은 AI가 표현한 갱년기 우울감을 겪고 있는 여성의 모습. ⓒ허프포스트코리아

갱년기 우울감은 사람마다 정도가 매우 다르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변화를 거의 느끼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기도 한다.

“오늘 음악을 듣다가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렀어요. 예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너무 짜증이 나요”

“매일매일 절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사소한 말에도 눈물이 나고, 가족에게 괜히 짜증을 내며,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일에도 마음이 쉽게 무너진다.

많은 사람이 "나는 원래 안 이랬는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갱년기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성격이 바뀌었다기보다 감정을 다루는 여유가 줄어든 상태에 가깝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생식기관뿐 아니라 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갱년기가 되면 에스트로겐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이러한 균형이 흔들리고, 기분이 쉽게 가라앉으며 작은 일에도 예민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불안해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지며,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여기에 밤마다 식은땀과 안면홍조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수면 부족은 감정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고 피로를 누적시켜 우울감을 더욱 심하게 만들 수 있다. 작은 스트레스도 크게 느껴지고, 자신도 모르게 가족에게 날카로운 말을 하는 일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럴 때 많은 사람은 스스로를 탓한다. '내가 너무 예민해졌나?', '왜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됐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갱년기 우울감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것도,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물론 모든 우울감이 갱년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여성은 자녀 교육, 부모의 건강 문제, 직장에서의 변화, 노후에 대한 걱정 등 여러 삶의 사건이 한꺼번에 겹치는 시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 변화와 삶의 스트레스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우울감이 더욱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변화는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은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 분비를 늘리고, 충분한 수면과 균형 잡힌 식사는 뇌의 회복을 돕는다.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다.

증상이 심하다면 참기만 할 필요는 없다. '갱년기 호르몬 치료가 정신과 약도 아닌데 감정 기복에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호르몬 치료는 우울감과 수면장애, 안면홍조를 함께 개선하면서 기분장애 완화에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울감이 2~3주 이상 지속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과 치료를 함께 받는 것이 오히려 빠른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결코 특별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갱년기는 성격이 바뀌는 시기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혹시 요즘 예전의 내가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가장 먼저 자신을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의 당신은 약해진 것이 아니다. 몸이 보내는 커다란 변화를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갱년기는 반드시 지나가는 과정이며,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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