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에서는 쉰내가 올라오고, 가만히 있어도 피부는 끈적해진다. 한국의 장마철을 괴롭히는 것은 쏟아지는 비만이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눈에 보이지 않는 습기가 서서히 일상을 파고든다. 장마철이면 습도는 90%를 넘나들며 집 안 곳곳과 우리의 몸을 눅눅하게 만든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장맛비가 내린 9일 서울 을지로입구역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습기와의 전쟁을 치러온 홍콩·대만·일본에는 무더운 여름을 견디는 나름의 생존법이 있다. 빨래가 마르지 않고 집 안 곳곳에 습기가 스며드는 환경에서 터득한 생활 지혜는 장마철 습도와 싸우는 한국에도 유용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젖은 빨래에도 특별한 대처가 필요하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 ⓒ픽사베이
홍콩에서는 제습기가 여름철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았다. 습도가 높은 날에는 빨래가 잘 마르지 않기 때문에 제습기를 건조용으로 활용하는 가정이 많다.
빨래는 옷 사이 간격을 넓혀 널고, 창문을 닫은 공간에서 제습기를 켠다. 선풍기나 서큘레이터를 함께 사용해 공기를 순환시키면 건조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실내에서 오래 말린 빨래 특유의 냄새를 줄이기 위해 실내 건조 전용 세제를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습기와의 전쟁은 옷장에서도 이어진다. 홍콩과 대만에서는 옷장·신발장·서랍 곳곳에 제습제를 두는 것이 흔한 생활 습관이다. 숯처럼 습기와 냄새를 흡착하는 소재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일본에서는 여름 동안 습기로 상하기 쉬운 겨울 코트나 고급 의류를 세탁한 뒤 전문 보관 업체에 맡기는 문화도 발달했다. 습기가 옷을 망가뜨리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여름나기다.
습도 높은 날에도 창문 연다고?
8일 오후 세종 지역에 강한 비가 내리면서 시청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 단지가 뿌옇고 보인다. ⓒ연합뉴스
습도가 지나치게 높은 날에는 무조건 창문을 여는 것이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바깥의 습한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면서 집 안 습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는 고온다습한 시기에 '회남천(回南天)'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습도가 급격히 치솟으면서 벽과 바닥에 물방울이 맺히고, 창문과 타일에는 결로가 생기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 시기 홍콩에서는 창문을 닫고 제습기를 가동해 실내 습도를 낮추는 경우가 많다.
장마철 한국도 마찬가지다. 습한 공기가 오래 머물면 벽지 뒤, 창틀, 옷장처럼 통풍이 어려운 공간에서 곰팡이가 번식하기 쉽다. 곰팡이가 퍼뜨리는 포자는 호흡기로 들어가 알레르기 증상이나 기침 등 호흡기 불편을 유발할 수 있다.
습도가 높은 날에는 무조건 오래 환기하기보다, 비가 그치고 외부 습도가 낮아진 시간대를 골라 짧게 환기하고 제습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제습기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된 6일 서울 중구 롯데하이마트 서울역점에 제습기가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제습기는 습기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는 아니다. 물론 제습기는 고온다습한 날이 잦아지면서 예전처럼 ‘있으면 좋은 가전’에 머물지 않고, 실내 습기를 관리하는 현실적인 해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빨래 건조가 어렵거나 곰팡이가 자주 생기는 공간이라면 제습기 활용이 도움이 된다.
제습기 구매시 가장 먼저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제습량’이다. 제습기는 하루 동안 공기 중 수분을 얼마나 제거할 수 있는지가 성능을 좌우한다.
작은 침실이나 원룸이라면 하루 제습량 10리터(L) 안팎의 제품으로도 충분하지만, 거실처럼 넓은 공간이나 빨래 건조용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16L 이상 제품이 적합하다.
습도가 높은 장마철이 긴 지역에서는 제습량이 큰 제품일수록 비싸지만 빠르게 습기를 제거하고 물통을 비우는 번거로움도 줄일 수 있다.
장시간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소음과 전기요금도 확인해야 한다. 침실에서 사용할 예정이라면 저소음 모드와 예약 기능을 살펴보는 것이 좋고, 물통 용량과 연속 배수 기능도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다만 제습기로 실내를 바싹 말리는 것은 좋지 않다. 쾌적한 실내 습도로 50~60% 정도를 권장된다. 너무 건조하면 피부와 호흡기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습도계를 함께 사용하며 조절하는 것이 좋다.
눅눅한 이불, 일어나자 마자 바로 갠다고?
습기는 침구에도 쌓인다. 자고 일어난 이불은 밤새 흘린 땀과 체온으로 수분을 머금고 있다. 아침에는 바로 개기보다 1~2시간 펼쳐두고 습기를 날린 뒤 정리하는 것이 좋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맑은 날 이불을 햇볕에 말리는 ‘후톤보시(布団干し)’ 문화가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이불 건조기를 활용해 장마철에도 침구 속 습기를 제거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비는 막지만 습기는 가두는 레인부츠
장맛비가 내린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에서 장화를 신은 시민이 길을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습도가 높을 때 가장 괴로운 것은 몸이다. 땀이 나도 공기 중 수분이 많아 쉽게 증발하지 않기 때문에 체온을 식히기 어렵고 피부의 끈적임도 오래간다. 이럴 때는 착용하는 옷과 신발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면 소재는 땀 흡수에는 좋지만 젖은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반면, 린넨(마) 소재는 통풍이 잘되고 피부에 달라붙는 느낌이 적어 불쾌감을 줄일 수 있다. 몸에 붙는 옷보다는 공기가 흐를 수 있는 헐렁한 옷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레인부츠는 빗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공기가 통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습한 날씨에 장시간 착용하면 부츠 안쪽에 땀이 차면서 발이 눅눅해지고 세균이나 곰팡이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 레인부츠는 비를 맞는 시간에만 짧게 활용하고, 실내에서는 다른 신발로 갈아 신는 것이 좋다.
발목을 지나치게 조이는 제품보다는 내부에 공기가 흐를 수 있는 여유있는 공간이 있는 레인부츠를 선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땀을 잘 흡수하고 빨리 마르는 양말을 함께 신는 것이 좋다. 레인부츠를 신고 난 뒤에는 부츠 안쪽까지 습기를 말려야 냄새와 세균 번식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