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5개월 동안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정몽규 시대가 막을 내렸다. 한국 축구 행정은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왼쪽).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일 엑스 계정에 'K-축구 혁신위원회' 출범 소식과 함께 박지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연합뉴스/최휘영 엑스 계정
4선 연임 정몽규 "때로는 기대에 부응, 때로는 깊은 실망"
대한축구협회는 6일 정몽규 회장이 오전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마지막 임원 회의를 마친 뒤 사임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지난 2013년 처음 대한축구협회장으로 당선된 이후 지난해 2월 4선 연임에 성공하며 '장기 집권'을 이어왔다. 그는 앞서 지난 5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대회 이후 사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정 회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대한민국 축구의 발전과 영광만을 바라보며 달렸다"며 "때로는 기대에 부응했고, 때로는 깊은 실망을 안겨드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영광과 성과는 선수들과 팬 여러분 덕분이며, 모든 부족함과 과오는 오롯이 저의 책임"이라며 "회장직에서 물러나 한 명의 열성적인 축구 팬으로 돌아가 한국 축구를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6월29일 촬영된 충남 천안 대한축구협회. ⓒ연합뉴스
정 회장의 사임으로 대한축구협회 정관에 따라 부회장 중 한 명이 대한체육회의 인준을 받아 회장 직무를 대행하게 된다. 이후 직무대행 체제를 중심으로 협회는 새 회장 선거 절차에 돌입한다. 정관 규정에 따르면 20일 이내에 '선거운영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며, 재선거 또는 보궐선거는 60일 이내에 치러야 한다.
공교롭게도 정 회장이 물러난 이날,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K-축구 혁신위원회도 공식 출범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박지성 국제축구연맹(FIFA) 분과위원회 위원이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하는 'K-축구 혁신위원회'는 한시적 기구로 운영된다.
축구 행정의 변화가 시작된 가운데, 대표팀을 둘러싼 후폭풍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6월29일 엑스 계정에 올린 글이다. ⓒ최휘영 엑스 계정
최 장관은 6월29일 엑스를 통해 "우리나라 축구의 참혹한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국민적 의혹을 규명하고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문체부는 대한축구협회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하겠다"며 "외부 전문가들이 포함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그동안 축구협회가 보여준 무능과 부실, 안일함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과정에 부조리와 비위,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고 밝혔다.
최 장관은 이어 "일각에서 축구협회의 신임 회장 선출과 관련해 기존 정관에 따라 예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염려가 있는 것으로 들었다"며 "축구계의 지혜와 현명한 판단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대한축구협회 차기 회장 선출 방식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정부 차원의 선거 제도 개편이 추진되는 분위기다.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사퇴한 홍명보 전 감독이 입국하는 6월3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찾은 팬들이 항의 현수막을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홍명보 국기대표팀 감독은 감독직을 사퇴하고 귀국 이틀 만에 미국행을 택했다. 국회 청문회와 경찰 조사를 앞두고 ‘도피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한국 축구대표팀 송준섭 수석주치의는 4일 페이스북에 "가족 품으로 찾아가는 게 도피냐"며 "모든 비판도 정확한 팩트 안에서 해야 그 정당성과 건전성을 의심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홍 전 감독은 6월 30일 대표팀과 함께 귀국한 뒤 이틀 만에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 LA로 떠났다. 홍 전 감독은 공항에서 취재진을 향해 "제가 할 이야기는 있는데 언젠가는 이야기가 잘 나올 것"이라고 말했고, "제 귀국 날짜가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외 언론은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최근 신변 안전에 대한 위협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 라디오 방송국 '코페'는 지난 4일 "홍 전 감독은 살해 협박까지 받았고,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향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내 온라인 공간에서는 홍 전 감독을 겨냥한 살해 협박성 게시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 6월 2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내가 총대 메고 홍명보 XXX 살해하겠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작성자는 자신을 41세 미국 국적이라고 주장하며 "홍명보 귀국하는 날 인천공항에서 살해하겠다"고 예고했다. 경찰은 해당 게시글을 살인 예고성 협박으로 보고 작성자를 추적 중이다.
이런 극단적 분위기는 온라인을 넘어 현실 공간으로도 번졌다. 지난 5일 엑스(X·옛 트위터)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한식당 출입문에 ‘홍명보는 출입 금지’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은 모습이 담긴 영상이 확산됐다.
정 회장의 퇴임으로 한국 축구는 새 출발을 맞았지만, 협회 개혁과 대표팀 논란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