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표현 하나를 두고 일베식 혐오 표현인지, 아니면 경남 지역 사투리인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서로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모습. AI 이미지.
걸그룹 리센느 멤버 원이의 "무섭노" 발언을 두고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혐오 표현이 아닌지 의심이 커지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혐오 세력이 원했던 게 이런 혼란과 과잉 해석, 서로에 대한 끝없는 의심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달 28일 공개된 유튜브 영상이었다. 경남 거제 출신인 원이는 일본인 멤버 미나미의 집을 방문한 영상에서 촬영을 하고 있던 피디(PD)가 "여기 뭔가 덜컹 소리가 났다. 뭐야 무섭노"라고 말하자 "무섭노"라고 반응했다.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는 6월28일 ' 미나미의 본모습'이라는 제목의 영상(사진)을 올렸다.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이 장면을 두고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연출한 경남MBC 김모 피디는 1일 엑스(X, 옛 트위터)에 "여성 아이돌과 피디가 사이좋게 '노-노'를 주고 받아 무척 속상했다"고 글을 남겼다.
이후 '무섭노'를 '일베식 표현'으로 규정한 글이 온라인에서 확산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그러자 해당 유튜브 영상에는 "경남사람이다. 저 상황과 분위기에서는 무섭노가 맞다", "부산사람이다. 평생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단어가 어쩌다 보니 일베가 됐다", "부산사람이다. 혼잣말로 할 때 무섭노, 물어볼 때 무섭나, 노나체 많이 쓴다. 제발 몰아가지 마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김 피디는 이날 다른 글을 통해 "이제 평범한 사람, 해맑은 청소년들, 멋지고 호감 가는 사람들마저 의심 없이 어법에 맞지 않는 '노'를 사용하기에 한없이 슬퍼진다"며 "저 역시 경상도 방언 사용자이자 고향의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혐오의 침략을 어쩌면 좋을지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피디는 3일 엑스에 "제가 열어버린 지옥문을 제가 닫을 수는 없다"며 "SNS는 토론에 적합한 수단이 아니라는 건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루아침에 정리될 수 없는 문제"라고 적었다. 이어 '일본어 잔재'를 언급하며 "그래도 모두의 마음 속에 분노보다는 고민을 남겼으면 좋겠다. 어떤 '-노'를 구분하느냐보다는 그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면 사용에 잠깐의 머뭇거림이라도 둘 수 있지 않은지 말이다"라고 말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가 6월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조국 페이스북
이 논란에 정치권도 가세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는 지난 5일 페이스북에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차원에서 일베가 문장 끝에 '노'를 붙여 사용하는 것을 옹호하며 부산/영남에서도 그렇게 쓴다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에 대한 반박으로 이하 부산 사람의 구별법을 참조하시길. 나의 관찰로는 일베는 표준말 뒤에 기계적으로 '노'를 붙여 사용한다"고 말했다. 조 전 대표는 '서울사람과 일베와 부산사람의 차이'라는 제목의 '일베 감별법' 이미지를 함께 올렸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는 2010년대 초반부터 표준어 문장 끝에 '-노'를 붙이는 말투가 일종의 인터넷 표현처럼 확산됐다. 이 표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맥락에서 사용되며, 이른바 ‘고인드립’의 일환으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노 전 대통령의 말투를 흉내 내는 방식에서 출발했으며, 그의 고향인 동남방언의 의문형 어미 '-노'와 성씨 '노(盧)'가 결합됐다고 알려져 있다.
'~노'와 같은 표현은 실제 동남 방언 내부에서도 지역과 세대에 따라 사용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의문형으로 기능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상황에 따라 감탄이나 영탄, 독백의 의미로 확장돼 쓰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방언은 생활 환경 속에서 변주되는 언어인 만큼, 동일한 형태라도 사용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특정 표현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혐오 표현으로 단정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혐오표현의 문제는 분명 존재하지만, 모든 사투리 표현이 그와 동일선상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일부 언어학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표준어 중심의 언어 인식이 작동한 결과, 즉 언어적 엘리트주의라는 지적도 있다.
물론 언어의 의미가 사용 맥락과 사회적 기억에 의해 달라지는 만큼, 같은 표현이라도 사람들은 이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일종의 의심의 필터를 거쳐 해석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표현 자체의 형식이 아니라, 누가 어떤 맥락에서 사용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온라인 혐오 표현은 특정 집단을 직접 공격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언어의 의미 자체를 불신하게 만들고 '이건 사투리인가 혐오인가' 같은 식의 끝없는 의심 구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결국 대화의 초점은 맥락이나 사람보다 단어 감별로 이동하고, 사회적 피로만 커진다. 결과적으로는 혐오가 겨냥했던 특정 대상뿐 아니라, 언어 전체와 일상적 소통까지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대혐오의 시대'에서 혐오는 알고리즘과 진영 논리, 그리고 서로에 대한 불신이 맞물리면서 점점 더 쉽게 퍼지는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에 대응하려면 감정적으로 바로 반응하기보다는 사실과 의견을 나눠서 보고, 상대를 집단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다시 바라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혐오적인 말을 그대로 퍼뜨리기보다 한 번 더 걸러 보는 책임, 정보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미디어 감각도 중요하다고 강조된다. 결국 혐오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건 감정에 끌려가기보다 그 뒤에 있는 구조를 이해하고,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방식을 스스로 조절하는 힘이라는 데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