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재명 정부의 향후 노선과 관련해 '제3의 길'을 언급했다. 진보와 보수라는 기존 프레임을 넘어 중도보수층까지 포섭하겠다는 정치적 포석으로 읽힌다.
보다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왼쪽)이 3일 서울 용산구 한 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해 송영길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여당 지지층도 분열하고 있는 마당에, 청년 실업·부동산·양극화 등 민생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외연 확장'을 위해 새로운 정치적 구호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강 실장이 언급한 '제3의 길'은 과거 1994년 영국 노동당 대표로 취임한 토니 블레어 총리가 정권 교체와 장기 집권을 위해 들고나왔던 대표적인 중도 실용주의 노선이다. 전통적 지지층에만 갇혀 있어서는 집권이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 아래, 우파의 정책까지 과감히 수용하며 외연을 넓히려 했다. 실제 노동당은 집권에서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블리어 총리(1997~2007년 재임)가 집권한 동안 영국의 뚜렷한 정치, 사회, 경제 개혁의 이뤄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이 과정에서 신선해 보였던 '제3의 길'은 이도 저도 아닌 정치 구호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이재명 정부가 임기 2년차를 맞아 외연을 확장하고 국정 동력을 확보하려는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왜 하필 30년 전 유행했던, 그리고 구체적 내용도 없어 정치 구호에 불과해 보이는 '제3의 길'이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제3의 길'은 역사적으로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뼈아픈 평가를 듣고 있다.
영국의 블레어 정부는 시장의 효율성을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신자유주의적 금융 규제 완화와 노동 시장 유연화를 과감히 도입했다. 그 결과 국가 전체의 부는 늘어났지만 자산을 가진 상위층으로 부가 집중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구조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고착화시켰다는 것이 평가가 적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지표들을 보면 서민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취업자 수는 2912만명으로 전년동월 대비 4만 명(0.1%) 감소했다.
특히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25만5천 명이나 급감해 5년4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을 나타냈다.
주거 사다리라 할 수 있는 보금자리론 금리는 연 5%대를 넘보고 있고 일반 주택담보대출은 8%대를 넘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취업에 성공한 30대와 40대는 내 집 마련의 꿈은커녕, 당장의 이자 감당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는 셈이다.
이재명 정부의 최대 성과로 꼽는 '증시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실제 소득 및 자산 격차는 날로 벌어져 양극화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6월10일 '이재명 정부 1년' 기자간담회에서 "코스피 8000이 노동자들의 행복 지수는 아니다"라며 "우리 사회 양극화는 더더욱 심해지고 있고 정부 정책은 이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민생경제의 어려움은 단순히 "중도 실용"이라는 선언이나, 제3의길이라는 정치 구호로 해결되지 않는다. 성장과 분배를 슬기롭게 조화시키는 구체적 정책 조합(Policy Mix)이 있어야만 풀 수 있는 난제들이다.
정부여당이 진정으로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고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고 싶다면 모호한 이념적 구호를 강조할 게 아니라 '삶이 나아지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또한 대선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개혁 과제들을 충실하게 실행함으로써 지지층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강 실장이 제3의 길을 언급한 자리가 다름 아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이었다는 점은 더욱 우려가 크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재명 정부가 진보적 정체성을 버리려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을 갖고 있는 전통적 지지층의 우려를 스스로 키운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제3의 길'이라는 철 지난 간판을 들고 중도층을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국민과 지지층에게 철석같이 약속했던 개혁과제들을 흔들림 없이 이행하는 동시에 남은 4년 동안 청년 실업·부동산·양극화 문제에서 눈에 잡히는 성과를 내야 한다.
1997년 영국 총리에 취임한 블레어 전 총리가 2006년 지지율 하락으로 총리에서 물러날 때 영국 가디언지는 △빈부격차의 심화 △소극적 개혁 △지나친 언론 플레이 등을 지지율 하락의 이유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