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열풍이 폭염과 폭우 등 '기후 위기'라는 복병을 만났다. 기록적 폭염과 이상기후가 데이터센터의 안정적 가동을 위협하면서 기후 리스크가 인공지능(AI) 투자의 새로운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실제 피해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한국도 침수 취약성으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시선이 나온다.
첨단 데이터센터 내부 모습. AI 이미지.
1일 미국 CNBC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유럽 전역을 강타한 폭염이 데이터센터와 공장, 원자력발전소 등 산업 인프라를 동시에 위협하고 있다.
폭염·악천후에 흔들리는 AI 심장 : 미국 유럽 '이중 위기'
인공지능 산업의 두뇌역할을 하는 데이터센터가 극한 기상현상의 위협에 정면으로 노축됐다.
미국 CNBC는 6월29일 보도에서 "인공지능 열풍이 기후 위기라는 예상치 못한 새 위협과 충돌하고 있다"며 "유럽 전역을 강타한 폭염이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산업계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고 짚었다.
데이터센터에 폭염이 취약한 이유는 구조적 '이중 압박' 때문이다.
무더위가 오면 냉방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망이 취약해지는 동시에, 고성능 칩을 쉬지 않고 가동하는 데이터센터의 냉각전력 수요도 치솟는다.
대형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평상시에도 전체 전력소비의 약 40%를 냉각시스템에 쓰고 있는데, 기온이 상승할수록 비율은 더 가파르게 올라간다.
기후리스크 분석기업인 퍼스트 스트리트(First Street)는 연구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약 80%가 홍수, 강풍, 산불을 포함한 극단적 기후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봤다.
특히 폭염과 가뭄을 포함한 만성적 기후위험 요인은 전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의 54%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퍼스트 스트리트 창립자인 매튜 에비 최고경영자(CEO)는 영국 가디언과 나눈 인터뷰에서 "데이터센터와 같은 실물자산에 대한 대부분의 입지조건 심사는 여전히 과거 데이터를 활용하지만, 기후는 더 이상 과거 기록이 예측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폭염, 가뭄, 수분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기후 리스크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보험사 취리히(Zurich Insurance)가 지난 3년간 자사의 데이터센터 포트폴리오의 최대 손실 원인이 악천후와 같은 기상리스크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취리히는 약 30억 달러(한화 약 4조 원) 규모의 자산이 기후위험 반경안에 있다고 경고했다. 보험사들은 이미 기후 리스크가 큰 지역의 데이터센터 보험 적용 자체를 줄이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후 위기가 심화할수록 '전력수요 급증'과 '공급 불안'이라는 이중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단기 운영문제를 넘어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전략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데이터센터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 침수 위험 세계 8위, 서울 4위
2026년 6월29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수원도시공사 직원들이 장마철 폭우 피해 예방을 위해 배수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공지능 허브로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데이터센터도 기후리스크 앞에서 예외가 아니다.
물리적 기후위험 분석 전문기관 XDI가 6월 공개한 '2026년 전 세게 계획된 데이터센터 물리적 기후위험 및 기후위험 대응력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신규 데이터센터의 물리적 손상위험 국가 순위에서 세계 8위를 기록했다.
물리적 기후위험이란 하천 범람, 지표수 침수, 해안 침수, 폭염 등 극한 기상현상으로 데이터센터 설비가 직접 피해를 입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서 건설될 예정인 데이터센터 27곳 가운데 22%는 이미 기후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특히 서울은 광역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전 세계 4위의 기후 고위험 지역으로 꼽혔는데, 주된 원인은 집중호우로 인한 지표수 침수였다. 도심에 밀집된 인프라가 기록적 폭우에 따라 한 번에 대규모로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XDI는 이와 같은 침수 위험이 한국 데이터센터의 가장 즉각적이고 현실적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데이터센터와 관련해서는 폭염위험도 안심할 수는 없다.
2026년 기준으로 한국의 폭염과 관련된 데이터센터 운영리스크는 미국 및 유럽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XDI는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한국의 폭염리스크도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데이터센터업계의 대응 : 액침 냉각·입지 전략 재편 '분주'
이처럼 기후리스크가 심각해지자 국내외 빅테크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는 최신 AI서버의 냉각액 허용 온도를 45도로 높이고 냉각기 설정온돌르 1도만 올려도 냉각비용이 약 4% 가량 절감된다고 조언했다.
데이터센터 업계에서는 기존 공랭식(공기로 식히는 방식) 대신 서버를 액체에 담가 냉각하는 '액침 냉각' 기술을 차세대 표준으로 주목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입지전략도 바뀌고 있다. 저렴한 전력을 따라 고온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짓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냉각에 유리한 지역이나 기후 복원력이 검증된 지역을 우선 선택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데이터센터의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조언을 하고 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은 데이터센터가 폭염에 대응하고 자체 열기를 처리하기 위해 △액침 냉각도입 △폐열의 지역난방 재활용 △입지규제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은 포춘과 나눈 인터뷰에서 "데이터센터의 열관리에 대한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반도체 및 에너지 재료산업의 기술발전에 주목해 그 영향을 최소화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