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는 이제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비가 아니라 재난의 신호가 됐다.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기록적인 폭우와 대형 홍수가 반복되면서 수많은 인명 피해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같은 비가 내려도 피해 규모가 다른 이유는 결국 '어떻게 대비했는가'에 달려 있다. 장마철이 다시금 다가오는 시점, 반복되는 재난인 홍수에 지구촌 이웃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홍수로 인해 고립된 가족. AI 이미지 생성.
기상청은 1일 올해 장마 시작을 공식 발표했다. 기상청은 "정체전선이 북상하면서 지난달 30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부지방까지 비가 확대됐고, 1일 정체전선에 동반된 저기압이 강해지며 비구름이 충청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이날 제주도와 전남 남해안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국 내륙은 낮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오르며 무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됐다. 충청권과 남부지방, 제주도에는 비가 내리고 수도권 북부와 강원 중·북부 내륙에는 오후부터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예상된다. 특히 제주도 산지에는 최대 120㎜ 이상의 폭우가 예보됐다
비가 내린 시간, 지형, 하천 수위, 배수시설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강수량 120mm는 일반적으로 홍수 위험이 있는 수준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서부 아프리카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지난 29일부터 30일까지 하루 만에 약 140㎜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최소 25명이 숨지는 등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홍수와 집중호우 같은 자연재해는 전쟁에 버금가는 수준의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남긴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극한 강수 현상이 갈수록 빈번해지면서 세계 각국은 단순한 복구를 넘어 피해 자체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물을 막는 것이 아니라 물과 공존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설계하고, 첨단 기술을 활용해 재난을 예측하는 등 홍수 대응 전략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중국의 '스펀지 도시'] 물을 막지 않고 흡수하는 도시
2014년 중국 구이저우성 홍수. ⓒ베이징=연합뉴스
중국은 자연의 기능을 활용해 홍수를 줄이는 대표적인 정책으로 '스펀지 도시(Sponge City)'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녹색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의 대표적 사례로, 도시 곳곳에 녹지와 투수성 포장재, 습지 등을 조성해 빗물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저장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스펀지 도시의 핵심은 빗물을 하수도로 곧바로 흘려보내지 않는 데 있다. 녹지와 투수성 포장, 인공습지, 저류시설 등이 먼저 빗물을 받아 흡수·저장한 뒤 이를 정화해 천천히 하천이나 저수지로 방류함으로써 단시간에 하천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막는다.
이 방식은 홍수 예방뿐 아니라 가뭄 대응에도 효과적이다. 저장한 빗물을 생활용수나 조경용수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어 물 부족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 정부는 2015년 '국무원 판공청의 스펀지 도시 건설에 관한 지도의견'을 발표하며 정책을 본격화했다. 당시 2020년까지 도시 면적의 20%, 2030년까지는 80%를 빗물 활용이 가능한 스펀지 도시로 조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며, 현재 우한과 샤먼 등 여러 도시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초기 사업 결과에서도 침수 감소와 수자원 활용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일본의 '대심도 저류시설'] 도시의 땅 아래 거대한 강이 흐른다
홍수 대응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 가운데 하나로 일본이 꼽힌다. 집중호우와 태풍이 반복되는 일본은 오래 전부터 대규모 치수시설(홍수를 막거나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모든 시설)을 구축해 침수 피해를 줄여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하 40~50m 깊이에 설치한 '대심도 저류시설'이다. 도쿄를 비롯한 8개 주요 도시는 홍수기에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한 뒤 수위가 낮아지면 방류하는 대규모 지하 저류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거대한 지하 공간이 일종의 임시 저수지 역할을 하면서 도심 침수를 효과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상습 침수지역인 요코하마도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다. 도시 대부분이 쓰루미강보다 낮은 지형인 점을 고려해 학교 운동장과 공원 등 공공시설의 지상과 지하를 활용한 대규모 유수지를 조성했다. 평상시에는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간이지만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그릇형 운동장이 빗물을 저장하는 시설로 전환돼 이후 받아낸 물을 하수도로 천천히 흘려보내 침수 피해를 최소화한다.
[호주의 '홍수 시뮬레이션'] AI로 홍수를 예측해 대응한다
AI 홍수예보에 쓰이는 수치표고모형. ⓒ국토교통부
호주는 실제 시설을 짓기 전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홍수 피해를 예측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홍수 시뮬레이션은 지형과 강우량, 하천의 흐름 등을 분석해 어느 지역이 얼마나 침수될지, 어떤 대책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미리 계산하는 예측형 재난 대응 기술이다. 최근에는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AI)을 접목해 다양한 홍수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저류지 설치나 우회 배수로 조성 등 여러 대안을 비교·검증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대표 사례인 2022년 리스모어 대홍수 분석에서는 저류지 10곳을 설치할 경우 홍수 수위를 약 2.07m 낮출 수 있다는 결과가 제시되기도 했다. 실제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효율적인 대응 방안을 찾아낼 수 있어 비용 절감과 재난 대응 능력 향상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예측 기반 재난관리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30일 집중호우와 화재, 강풍, 지진 등 복합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AI 기반 복합재난관리 통합 플랫폼을 개발·실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플랫폼은 다양한 재난 시나리오를 생성하고 각 재난이 서로 어떻게 연쇄적으로 확산되는지를 분석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히 홍수만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산사태와 화재, 기반시설 붕괴 등 연쇄 재난까지 함께 분석하는 시스템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