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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는 6월24일(현지시각) 규모 7.2의 전진에 이어 약 40초 뒤 규모 7.5의 본진이 발생하면서 국토가 순식간에 폐허가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8일 기준 사망자는 1450명, 부상자는 3150명, 이재민은 1만2721명에 달하며 주택 774채가 붕괴됐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이런 재난 앞에서 우리는 당황스런 장면을 마주하고 있다. 

[허프생각] 베네수엘라 구조 현장에서 어떤 이들은 셀카 찍었다 :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베네수엘라 강진에서 피해자를 구조하는 시민들과 그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공무원들. AI 이미지.

지진 발생 72시간이 지난 뒤에도 구조 현장에는 중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생존자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삽과 맨손으로 콘크리트 잔해를 파헤쳐야 했다. 정부는 구조대 투입 지연과 현장 통제 혼선, 실종자와 환자 정보 공유 실패 등 총체적인 대응 부실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무능을 나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경제난과 국가 시스템의 붕괴는 구조 체계와 의료 시스템까지 함께 무너뜨렸다. 

이번 재난에 모두가 생존자 구조를 위해 삽과 맨손으로 건물 잔해와 악전고투를 벌이는 와중에 당혹스런 장면도 없지 않았다. 치안이 무너지면서 일부 시민들은 상점에서는 식료품과 의약품은 물론 가전제품까지 약탈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리브 지역의 한 대형 약국은 지진 발생 몇 시간 만에 진열대가 모두 비워질 정도로 털렸다고 한다.

생존이 걸린 극한 상황에서 벌어진 약탈은 개인의 도덕성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재난과 생필품 부족, 치안 붕괴가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굶주림과 공포 앞에서 인간의 선택을 선악만으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정작 눈길을 끄는 장면은 따로 있었다. AP통신에 따르면 피해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굴착기를 몰고 현장에 도착한 일부 공무원들은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과 셀카를 찍은 뒤 별다른 구조 활동 없이 자리를 떠나려 했다고 한다. 구조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현장에서 셀카를 남기려 했다는 현지 증언도 이어졌다.

맹자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사단(四端)이 있다고 했다. 남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부끄러움을 아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양보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그것이다.

맹자의 말 대로라면 참사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자연스럽게 측은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피해자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셀카를 찍는 사람들에게 과연 측은지심이 있는 것일까. 

사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구조 현장에서 시신과 잔해 주변을 돌아다니며 금품을 훔치고 웃음을 지었던 여성의 모습이 포착된 적이 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 구조 현장 인근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던 사람들도 있었다.

[허프생각] 베네수엘라 구조 현장에서 어떤 이들은 셀카 찍었다 :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구조 현장에서 금품과 옷을 훔치던 여성. 일명 '악마의 미소'라고 불렸다. ⓒYTN 캡쳐
[허프생각] 베네수엘라 구조 현장에서 어떤 이들은 셀카 찍었다 :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이태원 참사' 구조 현장에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이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나 연평도 포격 전사자, 혹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인터넷상의 조롱에 견줘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온라인 공간의 악의는 두터운 화면 너머에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발현된다. 반면 재난 현장에서의 무감각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타인의 절망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더욱 직접적이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 재판을 지켜본 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이야기했다. 거대한 악은 특별히 잔인한 사람에게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무감각과 사고의 부재 속에서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외면한 채 셀카를 찍는 행위 역시 거대한 범죄는 아닐지라도,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지 못하는 무심함이 만들어낸 또 다른 얼굴의 악일 수 있다.

자극적인 영상과 짧은 콘텐츠, 끊임없이 소비되는 SNS는 타인의 불행마저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는 감각을 우리에게 익숙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술은 발전했지만 공감 능력은 제자리 걸음이거나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다시 맹자의 얘기로 돌아가자면, 맹자는 저서 '공손추'에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놀라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먼저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것이 인간 본성의 선함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라면 어떨까? 누군가는 가장 먼저 손을 내밀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꺼내 영상을 촬영하고 인증사진을 남길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간이 악해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일이 점점 더 평범해지고 있다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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