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미국 이란 전쟁이 끝났지만 에너지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구 차원의 탄소 규제는 강화될 일만 남았다. 대한민국 제조업은 기후 위기 속에서 '생존'이란 화두를 떠올린다. '한국형 녹색 대전환(K-GX)'은 생존을 위한 목숨줄이다. 그러나 제도는 미흡하고, 관심은 부족하다. 허프포스트코리아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공동 개최하는 '2026 기후경쟁력포럼’을 앞두고, 녹색 전환을 위한 전략과 과제를 짚어본다.
2024년 언론에 처음 공개된 경북 포항 포항제철소 수소환원제철 공정 설비 일부. ⓒ포스코
2026년 상반기, 국내 철강업계는 탄소중립 로드맵의 굵직한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포스코는 17일 전남 광양제철소에 단일 설비 기준 국내 최대 규모인 연산 250만t급 전기로를 준공했다. 현대제철은 2월부터 기존보다 탄소배출량을 20% 감축한 탄소저감강판 양산을 시작했다. 동국제강도 2026년까지 하이퍼 전기로의 기술 표준화를 완료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발 작업이 한창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친환경 전환을 넘어 글로벌 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풀이된다.
건설 경기 침체로 국내 전기로 생산량이 급감한 데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이 겹치면서 저탄소 공정 구축이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여기에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시계까지 돌아가고 있다. 2025년 확정된 이 목표에 따라 한국은 2035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의 53~61%를 줄여야 한다.
철강업계는 이 목표 달성에 있어 가장 주목되는 산업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철강산업의 온실가스 순배출량은 국내 전체 배출량의 15%, 산업부문 배출량의 40%를 차지한다. 철강업계의 감축 성적표가 국가 목표 달성에 직결된다고 볼 수 있는 비중이다.
문제는 대규모 장치산업 특성상 단기적 구조 전환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로(용광로)는 가동을 중단할 경우 쇳물이 굳어 설비 손상이 발생해 중단 자체가 쉽지 않고, 공정 전환 과정에서도 수조 원대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고로 공정의 온실가스 집약도(단위 생산량 당 온실가스 배출량)가 전기로 공정의 3배를 넘는 만큼, 철강업계는 고로를 저탄소 방식으로 전환하거나 전기로 등 대체 공정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각각의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포스코는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이산화탄소 대신 물을 배출하는 수소환원제철(HyREX) 공법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다. 2030년까지 데모플랜트 기술 검증을 완료하고 2050년까지 제철소 고로를 모두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한다는 로드맵을 갖고 있다.
최근 준공된 광양 전기로는 이를 위한 중간적 수단으로 활용되며 최종 목표는 100% 수소환원제철 달성이다. 당장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수소 조달이 당장의 애로사항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수소 가격은 kg당 1만 원 수준으로, 철강업계는 여기서 약 3분의1 수준 이하로 가격이 떨어져야 가격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제철은 고로 중심 구조에 전기로와 직접환원철(DRI)을 결합하는 하이큐브(Hy-Cube)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전기로를 활용한 자동차용 강판 시험생산에 성공했으며, 대규모 프리멜팅 전기로 투자를 통해 고로 대비 탄소 배출을 20%가량 절감하는 모델을 검증했다.
그러나 시제품 생산을 넘어 전체 공정 내에서의 복합공정 비중을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 로드맵 제시가 과제로 남아있다. 현재는 시험생산 성공과 투자 계획 발표가 있을 뿐, 고로를 어느 시점에 얼마나 줄일 것인지는 공개된 바가 없다. 고로 운영 계획을 구체화하고 NDC 데드라인까지의 실행력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리느냐가 핵심 과제다.
고로가 없이 전기로만으로 철강을 생산하는 동국제강은 고로 전환의 구조적 부담 없이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2028년까지 하이퍼 전기로 공정을 완성한다는 목표 아래 최근 기존 방식보다 고효율인 호퍼식 열원재 투입 방식을 도입했다.
경쟁사들의 전기로 도입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하이퍼 전기로가 기존 전기로보다 탄소 효율성이 높다는 것을 빠르게 입증해야 한다. 기술 외적 측면에서도 원가 변동성 리스크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전기로 확대에 따라 국내 고철(스크랩)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스크랩 수급망을 다변화하는 것도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철강 빅3가 저탄소 전환을 위한 설비 투자에 착수했으나, 여전히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경제성 있는 그린수소 공급망 구축, 무탄소 전력의 안정적인 수급, 그린 철강 소비 시장 조성 등 거시적 탈탄소 인프라 확충을 위해 정부와 철강업계의 공조도 필수적이다.
김지선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철강산업은 오랜 기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해왔으나 최근 글로벌 공급과잉 심화, 보호무역 확산, 수입재 증가, 탈탄소 전환 비용 부담 확대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철강 경쟁은 개별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산업생태계 경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 민관 공동 대응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