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향에 계신 이모님으로부터 아주 다급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습니다. 평소 어떤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으시던 무던한 성격의 이모님이셨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잔뜩 화가 묻어 있었습니다.
농지를 사고 팔 때는 법률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안전하다. AI 이미지.
이모님은 십수 년 전에 기획부동산 업자들의 개발 호재라는 말만 철석같이 믿고 사둔 시골 땅이 있다. 그런데 TV를 보니, 이 땅 때문에 나라에 벌금을 내야 될 수도 있다고 하던데 맞는지 물어오셨습니다.
사정을 여쭤보니, 본인이 직접 그 땅에 가서 농사를 지을 게 아니면 1년 안에 땅을 전부 남한테 팔아야 한다는 내용이었고, 만약 안 팔면 매년 큰돈을 벌금으로 계속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땅을 팔려고 인근 부동산에 내놓아도 사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이러다 꼼짝없이 망하게 생겼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이모님의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갑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농지가 본연의 목적을 잃고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며, 농지는 반드시 실제 농사짓는 농민의 것이어야 한다는 헌법상 경자유전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취지를 천명하였습니다.
특히 2026년 5월7일 농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종전까지 지자체의 재량이던 처분명령이 의무 규정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지자체가 미온적으로 대응하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직접 처분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까지 신설되어, 행정청의 단속은 이제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당장 시골로 내려가 농사지을 여력도 없는 상황에서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요?
대원칙: 농지는 오직 '농사짓는 사람'만 가질 수 있습니다
이모님을 혼란에 빠뜨린 이야기의 근간에는 바로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가 명시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투기를 막기 위해, 진짜 농사를 지을 사람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하지 말라는 국가적 선언입니다.
이를 구체화한 현행 농지법은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하는 농지 소유자에게 단계적 페널티를 부여합니다. 지자체장이 실태 조사를 통해 밭을 놀리고 있는 것을 적발하면, 먼저 1년 이내에 농지를 처분하라는 '농지처분의무 통지'를 보냅니다. 유예 기간이 지났음에도 땅을 팔지 않으면, 6개월 이내에 처분하라는 강력한 '농지처분명령'이 떨어집니다.
이모님께서는 매년 벌금을 물게 생겼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국가에 내는 돈을 통칭하여 벌금이라 부르지만, 법률 전문가의 시선에서 볼 때 이모님이 맞게 될 제재는 벌금이 아닙니다. 정확한 법률 용어로는 '이행강제금(履行强制金)'입니다.
벌금은 형사처벌로서 전과 기록이 남는 반면, 과태료는 주정차 위반처럼 전과가 남지 않고 한 번 납부하면 끝나는 행정 질서벌입니다. 하지만 이행강제금은 그 성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국가가 명령한 행정적 의무(농지 처분)를 이행할 때까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부과하는 금전적 압박 수단입니다.
처분명령을 무시할 경우, 땅을 팔 때까지 매년 감정평가액 또는 개별공시지가 중 더 높은 금액의 25%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이 반복 부과됩니다. 참고로 이 25% 기준과 감정평가액 병행 산정 방식은 2023년 8월 개정에서 이미 도입된 것으로, 종전 20%에서 상향된 수치입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4년이면 토지가액에 육박하는 금액을 강제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매우 강도 높은 규제입니다.
기획부동산을 통해 돈을 주고 '매매'로 농지를 살 때는 반드시 국가에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고 스스로 자경(自耕)을 약속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를 어기면 변명의 여지 없이 강력한 처분 대상이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농어촌공사가 운영하는 '농지은행'에 위탁 임대를 맡기면 합법적으로 이행강제금을 피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법적으로 농지법 제23조 제1항에 따라 개인이 소유한 농지를 한국농어촌공사 등에 위탁하여 임대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임대차가 허용되며 이를 통해 처분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문턱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농지은행은 단순히 서류를 접수한다고 모든 농지를 무조건 떠안아 주는 보관소가 아닙니다. 여기서 법이 말하는 '위탁하여 임대하는 경우'란 단순히 위탁 신청서를 접수한 상태가 아니라, 공사와 임대수탁계약이 실제로 체결되고 임차인과 연결되어 임대차가 개시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서류 접수증 한 장이 방패가 되어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획부동산이 쪼개 판 땅은 수십 명의 이름이 얽힌 공유지분이거나, 진입로조차 없는 산비탈의 맹지, 혹은 수십 년간 방치되어 굵은 나무들이 자라버린 임야 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리적으로 트랙터 등 농기계 진입이 불가하여 농업경영에 부적합한 농지, 혹은 공유자들의 동의를 얻기 힘든 복잡한 지분 농지는 실무상 서류 접수 단계에서 반려되거나 현장 실사 후 수탁이 거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탁 신청이 받아들여지더라도, 일정 기간 공고 후 해당 땅을 빌려 농사지을 실제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매칭 실패를 이유로 계약이 해지될 수 있습니다. 위탁 계약이 체결·유지되지 않으면 '임대차 예외'라는 법적 보호막은 즉각 사라지고, 지자체의 처분명령과 이행강제금 절차가 다시 재개됩니다.
직접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맹지라 팔리지도 않으며, 유일한 비상구인 농지은행마저 수탁을 거부하는 정책의 사각지대. 이대로 앉아서 매년 부과되는 이행강제금을 그대로 감수해야만 할까요?
첫째, 처분명령에 대한 쟁송 및 집행정지의 검토가 필요합니다. 물리적으로 복구가 어려운 토지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처분명령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은 아닌지 따져볼 수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 집행정지 신청을 통해 부과 절차를 다툴 여지가 있는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다만 맹지·임야화 농지라는 사정만으로 처분명령이 곧바로 위법해지는 것은 아니므로, 개별 사실관계에 대한 면밀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둘째, 지목 변경 가능성 및 '정당한 사유'의 입증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토지가 농지법 적용 이전부터 사실상 임야화되어 지목 변경을 청구할 법적 근거가 존재하는지, 혹은 지자체장에게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못하는 '정당한 사유'를 소명하여 처분 유예를 끌어낼 수 있는지 다각도로 우회로를 살펴야 합니다.
헌법이 농민을 지키려 만든 원칙이, 정작 농민이 될 수 없었던 평범한 토지 소유자의 발목을 잡는 역설. 농지법 개정 이후의 진짜 시험대는, 바로 이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워 갈 것인가에 있지 않을까요.
글쓴이 김승현 변호사는 법무법인 선인 파트너 변호사다. 한양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거제시에서 행정법률 자문 공무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소송 현장을 누비며 법적 문제를 해결해 왔다. ‘승변’은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뜻에서 그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복잡한 법전 속에 갇힌 법률 상식이 아니라, 당장 내 삶을 지켜주는 유용한 생활 법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