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무기화 하며 선박당 200만 달러(한화 30억 원) 안팎의 '항해 서비스료'를 받겠다며 사실상 '호르무즈 요금소'로 만들고 있다.
이란은 '우리도 수에즈 운하나 보스포루스 해협처럼 요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튀르키예가 다르다넬스·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몽트뢰 협약에 근거해 제한적 서비스 수수료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 중인 선박들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매체 파르스는 7일(현지시각)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1척당 평균 150~200만 달러(한화 약 23억~30억 원)의 요금을 징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파르스는 모센 잔가네 이란의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의원을 인용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선박을 대상으로 서비스 수수료 징수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란의 '서비스료' 논리의 한계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이슬람 협의회(의회) 의장이 2024년 7월11일 타우라이드 궁전에서 열린 제10회 브릭스(BRICS) 의회 포럼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 타스통신=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와 오만해를 잇는 폭이 30km 남짓한 자연해협이다. 전 세계 해상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가 오가고,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가 지난다.
이 때문에 이 해협의 차단과 유료화는 곧 세계 에너지 동맥을 손에 쥐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란은 이란전쟁에 대한 손실보상을 명분으로 내세워,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처럼 통행료를 받을 주권적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란은 미국으로부터 일방적 공중 폭격을 당해 지도부가 한꺼번에 참살당한 '약소국'으로서 국가의 주권과 생존을 위해 여러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 세계 1위의 군사대국인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1만 곳이 넘는 공중 폭격을 이어갔다. 국가의 생존이 벼랑끝에 내몰렸던 셈이다.
미국이 국제법 질서를 정면으로 거슬러 이란을 폭격했지만, 이란의 호르무즈 통행료도 국제해양법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국제 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 대해 '통과 통행권'을 보장한다. 그리고 영해라고 하더라도 단순 통과 자체를 두고 통행료를 부과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유엔해양법협약상 특정 서비스를 제공한 경우에만 비용청구가 허용되는데, 통상적으로 도선, 예인, 구조 및 등대관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란은 협약에 비준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구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주요 해양국이 공유하는 관행과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셈이다.
이란이 줄곧 비교 대상으로 내세우는 수에즈 운하와 튀르키예 해협의 사례는 오히려 이란의 논리적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수에즈 운하는 자연해협이 아니라 인공운하이며, 통행료 체계가 다자적 조약 기반의 투명한 규칙 위에서 운영된다.
튀르키예의 해협도 몽트뢰 협약이라는 다자 합의를 바탕으로 제한적 수수료를 걷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통과 통행권'을 걷겠다면 국제적 다자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현대 통행료 체제 도입에 찬성하는 국가가 없기에 이러한 다자합의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오랜 역사와 갈등 끝에 이르른 튀르키예 해협 '합의'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AI 사진.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은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전략적 수로다.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각 열강의 관심과 압박이 집중된 곳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로잔 조약을 거치면서 튀르키예의 해협통제권은 크게 제한됐지만, 1936년 몽트뢰 협약을 통해 일정 부분 회복됐다.
몽트뢰 협약은 1936년 스위스 몽트뢰에서 튀르키예와 영국·프랑스·소련 등 유럽 열강, 흑해·에게해 연안국들이 체결한 해협 통제 조약이다.
보스포루스·다르다넬스 해협의 통제권을 튀르키예에 돌려주되, 평시에는 모든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통과를 원칙으로 했다. 튀르키예가 해협의 안전관리 책임을 지고, 전시나 전쟁 위협 때에는 군함의 통과를 통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튀르키예가 받는 '통행료'는 이 협약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등대, 구난구조, 의료검역 등 항해 안전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로 규정된다.
보스포루스·다르다넬스 해협의 요금율은 수십 년간 톤수당 80~90여 센트 수준에 머물다가 2022년 이후 물가와 비용을 반영해 톤당 4달러 수준으로 조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해협 통과 자체를 제한하거나 특정 국적 선박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수단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물론 튀르키예도 이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
튀르키예는 보스포루스·다르다넬스 해협 통과를 둘러싼 안보·정치적 레버리지를 활용해 왔으며, 통행 수수료의 인상 때마다 해운업계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요컨대 튀르키예는 다자 협약과 국제 관행에 따라 통과 자유를 전제로 한 제한적 수수료를 받고 있지만, 이란은 자연 해협의 통과 권리 자체를 중단시키고, 전쟁·제재라는 정치 상황을 지렛대로 삼아 요금을 책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