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글로벌로지스가 행정구역 개편과 인구밀도 변화 등 배송 환경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급지 체계 개편에 나섰다. 기존 급지체계는 10년도 더 된 이전 행정구역을 기반으로 설계돼 신도시 개발과 인구 이동, 주거 형태 변화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배경에서다. 물류업계에서도 배송 난이도와 물량 처리 효율에 따라 급지를 조정하는 것은 일반적 운영 방식으로 평가된다.
한 택배업체의 물류센터에서 작업자들이 택배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필요성과 별개로 추진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반발이 나오고 있다. 4일 택배노조에 따르면 롯데글로벌로지스 택배노조는 급지체계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한 달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는 급지 조정이 택배기사들의 노동조건과 소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임에도 원청이 대리점과의 계약을 통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정작 현장 기사들과의 논의는 부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리점별 계약 방식이 달라 실제 수수료 변동 규모를 기사들이 사전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불만 요인으로 꼽힌다.
의사소통 부족에 대한 현장의 불만은 회사 결정 배경을 둘러싼 의구심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노조는 급지체계 현실화라는 명분에는 일부 공감할 수 있지만, 영업이익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진된 개편인 만큼 수익성 개선 목적도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급지 현실화 필요하지만, 기사들 수입 감소 걱정
물류업계에서는 도시 개발과 인구이동 등으로 지역별 배송 여건이 크게 달라진 만큼 급지체계 역시 이를 반영해 효율적으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같은 물량을 처리하더라도 대단지 아파트와 빌라 밀집 지역 간의 배송 효율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단지 아파트에서는 한 동에서 수십 건을 물량을 처리할 수 있는 반면, 저층 주택가에서는 이동 거리와 시간이 더욱 소요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물류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배송 효율이 높은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급지를, 배송 난이도가 높은 지역에는 높은 급지를 적용하여 수수료를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 유지돼왔다.
물류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급지 조정 과정에서 일부 지역의 건당 수수료가 낮아질 수는 있지만, 배송 효율 향상에 따라 처리 가능한 물량이 늘어나면서 전체 수입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과거 주택가 비중이 높아 배송 효율이 떨어졌던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경우, 동일한 시간 동안 처리할 수 있는 물량이 크게 늘어나 건당 수수료 인하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물량 증가에 따른 수입 증가 논리가 택배기사들의 실제 노동 강도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처리 물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택배를 배송해야 한다는 의미인 만큼, 단순히 총수입만으로 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구간에서는 건당 수수료 자체가 낮아진다는 점에서 택배 기사들의 우려도 크다. 택배기사들은 기본급 없이 배송 수수료를 주된 수입원으로 삼고 있어 건당 수수료 인하가 곧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으며, 현장에서는 이를 사실상 임금 삭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박상호 택배노조 롯데본부장은 "물량이 늘어나면 택배 노동자가 일을 더 해야 한다. 100개가 늘어나면 100개를 더 배송해야 하고 더 걸어 다녀야 하고 더 실어야 한다"며 "택배 노동자들은 기본급도 없고 퇴직금도 없어 수수료가 곧 임금인 상황인데, 수수료 인하는 사실상 임금 삭감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급지 현실화 논의 속 빠진 ‘현장 교섭’, ‘누구와 논의했나’가 핵심 쟁점
무엇보다 이번 급지체제 개편의 실질적 적용 대상인 택배기사들이 이번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점에서 현장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박 본부장은 "회사가 급지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왜 필요한지, 어떤 기준으로 조정하는지 노동자들에게 설명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먼저 있어야 한다"며 "노동조건과 임금조건이 바뀌는 문제라면 당연히 현장 기사들과 교섭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리점별 계약 구조와 적용 방식이 달라 기사들이 실제 수수료 변동 규모를 사전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현장의 불만 요인으로 꼽힌다. 노조는 일부 대리점의 경우 급지체계 개편을 명분 삼아 기사들에게 추가적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실제 현장에서는 대리점이 이를 근거로 더 큰 폭의 삭감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 박상호 본부장은 "최근 경기 성남의 한 대리점에서는 기사들에게 건당 200원 삭감을 통보한 사례도 확인됐다"며 "본사 차원의 급지 개편이 현장에서 더 큰 폭의 수수료 조정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급지 세분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원청이 주도한 급지체계 개편이 현장에서 수수료 조정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음에도 정작 택배기사들과의 사전 협의나 설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보는 이번 갈등의 핵심 역시 수수료 수준 자체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소통 부재에 가깝다.
박 본부장은 "핵심은 신 급지 체계를 만든 건 대리점이 아니라 원청이라는 점이다"며,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수료 조정의 출발점이 원청의 결정이므로 그 책임도 원청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수수료 갈등을 넘어 이른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택배업계 노사관계의 방향성을 가늠할 사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급지체계 조정의 적정성뿐 아니라 원청의 교섭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앞으로 택배업계 전반의 노사 교섭 관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본부장은 "노동조건과 임금조건을 변경하려면 당연히 교섭을 해야 한다"며 "이번 사안은 노란봉투법 이후 원청의 교섭 책임 범위를 확인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익성 부담 커진 택배부문, 급지 개편 배경 해석도
의사소통 부족에 대한 현장의 불만은 회사의 결정 배경을 둘러싼 해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택배사업 영업이익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추진된 개편인 만큼, 일각에서는 수익성 관리 차원의 고려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노조는 이번 급지체계 개편이 회사가 설명하는 행정구역 및 인구 변화 반영 목적과는 별개로, 영업이익 개선 등 수익성 관리 측면의 고려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물류업계에서는 급지 재조정을 통해 배송 효율성과 운영 효율성이 개선될 경우 결과적으로 수익성에도 일정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이번 개편이 수익성 개선을 목적으로 추진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 관계자는 “이번 개편은 수수료 삭감이 아닌 공정한 급지체계 필요성에 따라 추진하게 됐다”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해석이 나오는 배경으로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낮은 수익성이 지목된다. 실제로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경영 환경 속에서 수익성 방어가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지난해 817억 원으로 2024년 같은 기간보다 9.4% 감소했고 올해 1분기도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5% 줄었다. 특히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사업인 택배(Lastmile) 부문은 수익성 악화가 두드러졌다.
해당 사업부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0.97%로 2024년보다 1.3%포인트 하락하며 1%대 아래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325억 원에서 135억 원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1월부터 시작한 택배 주 7일 배송 초기 운영비용과 업계 경쟁 심화에 따른 택배 단가 하락이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부진이 그룹 전체를 흔들 수준의 리스크는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낮은 수익성이 장기화할 경우 기업가치 제고 방안 마련에 대한 요구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롯데지주는 최근 수년간 계열사 출자부담과, 케미칼·유통업계 성장 둔화 등으로 재무 부담이 확대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과거보다 자금 운용 여력이 제한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관련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장 일각에서는 상장 추진 필요성이나 보유 지분 활용 방안, 나아가 매각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일부 투자자 커뮤니티에서는 롯데글로벌로지스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을 언급하는 반응도 나온다.
실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부진이 계속된다면 그룹 차원에서 추가 부담을 지기보다 계열사 매각이 필요하다”, “비주력 계열사 매각을 통해 기업 디스카운트를 해소해야 한다”, “상장은 실패했어도 장외시장 가치 관리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의견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