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벌이는 종전협상에서 이란 핵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란의 핵문제는 전쟁 개시의 첫 번째 명분이었던 만큼 '빈손'으로 이란 전쟁이 끝난다면 큰 정치적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두 차례 이란의 뒷통수를 때린 적이 있는데 이것이 핵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를테면 자신의 업보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각) 이란과 벌이는 종전협상에서 고농축 핵물질 포기만으로는 제재 완화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미국 매체 PBS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PBS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이란이 제재 완화의 대가로 고농축 핵물질을 포기하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핵물질 포기만을 대가로 제재완화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이란의 핵물질 포기와 60%까지 농축한 우라늄을 제거하는 것을 조건으로 종전합의를 진행해왔다.
다만 고농축 핵물질의 처리 장소를 두고 미국으로 반출을 주장하다가 5월25일에는 이란과 조율을 통해 이란 현지에서 폐기하거나 다른 용납 가능한 장소에서 미국 원자력에너지위원회 등이 입회한 가운데 폐기될 것이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물질 제거'를 종전협상의 주요 의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행보로 인해 이란은 이번 협상에서 미국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이란은 이번 전쟁 직전까지 요르단의 중재로 미국과 벌인 핵협상에서 '큰 양보'를 미국에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대규모 공중 폭격을 시작하면서 이란 쪽 제안을 한 순간에 휴짓조각이 됐다.
영국 가디언은 이란전쟁 직전 핵협상이 단순한 탐색전이 아니라 실제 타결직전까지 갔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당시 이란이 제시한 카드는 꽤나 파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와 가디언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아래 고농축 핵물질 약 440kg을 희석하고 추가 비축을 포기하는 방안, 3~5년간 핵농축을 멈추는 방안, 미국기업의 이란 에너지 부문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까지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협상에 중대한 진척이 있었음에도 미국이 전쟁을 개시함에 따라 이란 쪽은 미국-이란 핵협상을 두고 군사 공격을 위한 위장술에 불과했다고 바라볼 수 있다.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이란은 2015년 오바마 행정부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공동으로 참여한 '이란 핵합의'(JCPOA)를 맺었다. 오랜 협상을 통해 합의에 이르렀으며 유엔 쪽 지지까지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이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는 돌고 돌아 지금의 종전협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어도 오바마 행정부 당시 합의보다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이란 매체들은 미국을 향한 불신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란 파르스 통신은 27일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최종합의가 타결됐다고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파르스 통신은 "미국이 남아 있는 쟁점들에 완전히 합의를 이루기 전에 이를 대중에 확정된 것으로 알려 이란을 압박하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며 "수 시간 안에 일방적으로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문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사실상 이란전쟁은 '실패한 전쟁'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제인 다비 멘턴 카네기국제평화재단 핵정책 프로그램 연구원은 최근 리포트에서 "이란과 핵협상 도중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한 결정은 핵문제 해결에 실질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외교적 수단의 신뢰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며 "이란전쟁은 이란의 핵농축권 주장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못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