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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발견한 반장은 교사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았고, 학급 일지 구석에 이 사실을 따로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개월이 지나 학급에서 괴롭힘 사건이 발생한 것을 파악한 교사가 질책하자 반장은 이미 보고를 마쳤다며 항변했다.

주변에서는 다가올 새 반장 선거를 앞두고 기존 반장을 탓하거나 옹호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왜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괴롭혔는지, 어떻게 하면 동일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지를 향한 관심은 크지 않다.

이 가상의 상황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노선 삼성역 공사 현장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간단히 보여주는 사례다. 앞서 4월29일 국토교통부는 서울시의 보고에 따라 삼성역 복합환승센터 지하5층 GTX 승강장부 기둥 주철근 2열을 1열로 착오 시공한 사실을 파악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시행 주체인 서울시에 이 사실을 보고한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이 지나서다.

[허프 생각] 3년 만에 재발한 '순살 공포' 지우려면, 정치 잠시 비켜나 부실시공 원인 들여다봐야 한다
서울 강남구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노선 삼성역 공사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철근 누락 기둥을 살피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그것도 대심도의 막대한 하중을 견뎌야하는 지점에서 나타난 철근 누락이라는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초점은 서울시와 국토부의 책임공방, 그리고 다가올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치권의 대리전으로 옮겨가고 있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서로를 탓하며 '내 잘못이 아니다'를 강조하고 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정치인이 시장으로 있는 서울시를, 야당인 국민의힘은 선거용 공세라며 정부부처인 국토부를 맹비난하고 있다.

보고 체계의 허술함 속에서 발생하는 행정 처리 문제를 비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치권의 공방 속에서 정작 사태의 1차적 원인을 제공한, 철근을 빼먹은 시공사의 과실이라는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목적이 건설산업의 본말을 전도한 일은 3년 전인 2023년 발생한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이 사고는 전단보강근을 누락해 발생한 것으로 시공사인 GS건설의 시공 문제와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감독 실패가 겹친 인재다. 그러나 당시 사태 수습 과정에서 전면에 서게 된 것은 건설산업의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보다는 시공사와 공기업을 압박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한 정치인 출신 국토부 장관이었다.

당시 장관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기 전부터 직권으로 최대치의 영업정지 처분이 있을 것이라고 시공사를 압박했고, '카르텔과 전쟁'이라는 정치적 구호를 앞세워 공을 쌓는데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질적 전관 특혜와 부실 관행을 정조준한 취지는 당연히 타당했지만 주무부처 장관이 해결사로 나서면서 사안은 정치적 무대로 변질됐다. 

건설사 압박과 부패 척결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인천 검단사태는 철근 누락을 막고 감리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 개혁이 실제로 얼마나 이뤄졌는지는 결국 미지수로 남게 됐다.

3년 전 사고에서 정치적 목적에 매몰돼 본질을 다듬지 못했던 것이 이번 GTX 철근 누락 사태로 또다시 발현된 것은 아닐까.

현재 GTX 사태에서는 지방선거라는 대형 정치 이벤트와 맞물려, 여야는 이 사건을 상대 진영을 타격하기 위한 선거공학적 지렛대로 소비하고 있다. 정치권의 공방 속에서 '국내 굴지의 최상위 건설사가 왜 가장 기초적 도면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는지'에 관한 문제의식은 실종돼 버렸다.

보고 의무를 소홀히 한 행정의 실책을 바로잡고 정치권이 이를 견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역동성이라고 볼 수 있다.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지방선거 역시 매우 중요한 이벤트다. 그러나 정치가 산업의 이슈를 집어삼켜 사안의 진짜 문제를 가려서는 안 된다.

이번 GTX 사태에서 시공사의 해명에 따르면, 가장 먼저 이뤄져야할 것은 건설사에서 일하는 작업자가 설계도면을 잘못 해석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는지다. 

단순한 '휴먼에러'였는지, 인력 관리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향후 재발방지를 위해 어떤 조치를 해야할지 등을 먼저 해결해야 '순살 공포'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만약 관리감독 체계가 허술한 것에 문제가 있고, 그 허술함 때문에 건설업계가 해이함에 빠졌다고 해도, 이 문제가 부실시공의 원인을 찾는 데 앞설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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