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세 차례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를 내놨지만, 그의 사과는 여론을 달래기는커녕 오히려 분노를 키우는 불씨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비판의 목소리는 더 거세졌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과 관련해 사과문 발표를 위해 단상에 오르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5·18기념재단과 공법3단체(부상자회·공로자회·유족회) 회원들이 이날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8 폄훼 표현으로 물의를 일으킨 스타벅스 코리아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을 규탄하고 있다.ⓒ연합뉴스
먼저 '5·18 관련 오월 단체'들은 정 회장의 사과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공법단체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5·18기념재단(이하, 오월단체)는 26일 공동성명에서 "역사를 모욕한 자의 빈껍데기 사과를 거부한다"며 "정용진의 사과는 오월 영령과 광주 시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5·18기념재단과 공법3단체(부상자회·공로자회·유족회) 회원들이 26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8 폄훼 표현으로 물의를 일으킨 스타벅스 코리아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월단체는 이어 "보여주기식 사과가 아닌 역사적 상처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며 "5·18과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재발 방지 대책을 공개적으로 약속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나아가 "광주 시민과 오월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준 데 대해 끝까지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정용진은 이번 '탱크데이' 논란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사퇴까지 촉구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의 비판도 이어졌다. 정의당은 이날 '정용진 회장의 대국민변명쇼 황당하다, 진상규명 똑바로 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 회장은 변명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 자기 잘못이라면서도,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시기’라는 둥 대국민 훈계만 늘어놨다"고 지적했다.
정의당은 이어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계엄군 탱크를 연상시키는 마케팅을 한 것이 생각의 차이로 정리될 문제인가"라고 날을 세웠다.
손솔 진보당 수석대변인도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현장 직원들을 내세워 '따뜻하게 봐달라'고 감성에 호소한 것 역시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경영진의 잘못으로 국민들로부터 뭇매를 맞자, 현장 노동자들을 방패막이로 삼은 비겁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는 과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멸공 논란'부터, 극우 정치·종교 컨퍼런스인 '빌드업코리아'에 대한 후원까지, 정용진 회장 스스로 끊임없이 표출해 온 왜곡된 역사 인식과 극우적 행보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라며 "정 회장은 어설픈 '사과쇼'로 대충 넘어갈 생각 말고, 모든 사태의 최종 책임자로서 신세계그룹 회장직에서 즉각 사퇴하라"고 일갈했다.
24일 오후 광주 광산구에 위치한 스타벅스에는 손님 한 명만 앉아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여론의 싸늘한 온도는 이미 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24일 일요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스타벅스 매장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였다. 손님은 딱 한 명뿐이었고, 늘 북적이던 카공족이나 대화하는 고객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탱크데이' 이벤트에 분노한 시민들이 불매로 발길을 돌린 결과였다.
시민들의 반응도 격앙돼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간직한 서구 주민 고아무개씨(66)는 "탱크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며 "이건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분노했다.
또 다른 시민 이아무개씨(71)도 "지인들에게 스타벅스 기프티콘 받아둔 게 많은데 전부 환불할 생각"이라며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날에 어떻게 탱크데이라는 말을 쓸 수가 있느냐? 이번 일로 스타벅스가 어떤 기업관을 가졌는지 아주 똑똑히 알게 됐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25일 서울 시내의 한 스타벅스 매장. ⓒ연합뉴스
이 현상은 광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주말 점심시간 평소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 서울 서초구 스타벅스 파미에스테이션 점 역시 한산한 분위기였다.
빈 좌석이 눈에 띄는 가운데, 인근의 컴포즈커피와 메가커피 매장에는 오히려 주문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며 뚜렷한 대비를 이뤘다. 이처럼 스타벅스를 대신할 선택지는 이미 충분하다는 점도 불매 운동을 가속화하고 있다.
전국 스타벅스 매장은 2100개가 넘는 반면, 메가커피와 컴포즈커피 두 브랜드 매장 수만 합쳐도 5500개 이상이다. 여기에 빽다방, 이디야, 그리고 골목 곳곳의 개인 카페까지 더하면 사람들의 발 길이 닿는 곳마다 커피집이 있는 셈이다.
일상 속 깊숙이 자리했던 스타벅스의 충성 고객층도 대거 이탈하고 있다. 특히 모바일 기프티콘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해왔던 만큼 선물받은 기프티콘까지 환불하겠다는 움직임은 브랜드 이탈로 이어지는 신호라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다. 사건의 고의성조차 충분히 해명되지 않은 채 변명성 설명만 이어진 사과에 여론의 분노는 오히려 더 커지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