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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12인치 웨이퍼 기준 글로벌 시장점유율 3위인 SK실트론 인수에 가까이 다가가며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다시 중공업에서 AI 소재·인프라기업으로 변신을 본격화한다.

박 회장은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두산 전자BG에서 최근 AI 반도체 부문에서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동박적층판(CCL)을 통해 반도체사업의 힘을 확인하고 있다.

박 회장은 SK실트론 인수를 기점으로 반도체 가치사슬(밸류체인)을 구축하는 동시에 에너지와 건설기계, 로봇 등 분야에서도 AI 소재·인프라 기업으로의 체질개선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 자체사업 '동박적층판'에 SK실트론 '웨이퍼' 얹어 반도체 기업으로, 박정원 AI 소재·인프라로 '제3의 대전환' 꾀한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오른쪽)이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과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의 두산 부스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두산

18일 재계에 따르면 두산은 이달 안에 SK실트론 인수를 위해 SK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17일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얻은 지 5개월여만이다.

계약대상은 SK 측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이고 추가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나머지 지분 29.4%도 올해 안에 두산이 모두 인수해 SK실트론을 100% 자회사로 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모두 합해 거래 규모는 5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당초 SK실트론의 거래를 놓고 양측의 의지가 강했던 만큼 속전속결로 인수 및 매각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실적 부진을 겪은 SK실트론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사업 탓에 진행이 다소 지연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은 전기차에 활용하는 차세대 반도체 소재 부문인데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길어지면서 인수 과정에서 SiC 웨이퍼사업이 걸림돌로 작용해온 것이다, 다만 SiC 웨이퍼사업을 청산하기로 합의하면서 두산의 SK실트론 인수가 결실을 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SK실트론은 12인치 웨이퍼 글로벌 3위 기업으로 최근 3년 기준으로 연간 평균 매출 2조700억 원, 영업이익 2630억 원, 13%를 웃도는 영업이익률 등 단단한 실적을 내는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반도체가 '슈퍼사이클(초호황)'에 접어든 만큼 산업의 핵심 재료인 '원형의 판' 웨이퍼 기업으로서 성장성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 회장은 SK실트론 인수를 계기로 두산그룹의 반도체 관련 사업의 실적 개선세에 속도를 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이 최근 우호적 시장 상황과 함께 자체사업인 전자BG에서 최대 실적을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 전자BG는 지난해 매출 1조8757억 원, 영업이익 4850억 원으로 역대 실적 최고점을 경신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86%, 영업이익은 296% 급증한 것이다. 이어 올해 1분기에도 매출 6173억 원, 영업이익 1856억 원으로 분기 기준 기록을 세웠다.

두산 전자BG는 주력 제품인 동박적층판(CCL)을 앞세워 호실적 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CCL은 전자제품의 신경망 역할을 하는 인쇄회로기판(PCB)의 핵심 기초소재로 수지, 유리섬유, 충진재, 기타 화학물질로 구성된 절연층에 동박을 적층한 제품이다.

CCL은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AI 가속기는 머신러닝과 딥러닝에 필요한 데이터 학습 및 추론 연산을 고속으로 처리하는 특화 시스템 반도체다. AI 가속기는 대규모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해야 하는 만큼 신호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고온의 가동 환경에서도 안정적 성능을 유지하는 고성능 CCL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잘 알려진 AI 가속기로는 엔비디아의 '블랙웰', '베라루빈' 등이 있다. 두산 전자BG는 엔비디아 AI 가속기의 주요 공급사로 알려져 있다.

두산 전자BG의 CCL 생산설비 4곳(익산·김제, 증평, 김천, 중국) 평균 가동률을 보면 올해 1분기 92%를 기록했다. 국내 증평 및 김천 공장은 100%를 넘는 등 사실상 '풀가동' 상황으로 파악된다. 앞서 1년여 전인 2024년 CCL 생산설비 평균 가동률은 74%에 그쳤다.

박 회장은 최근 CCL 수요 증가에 적기에 대응하기 위해 두산 전자BG의 신규 투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두산은 1800억 원을 들여 2028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태국에 신규법인을 설립하고 고성능 CCL 생산공장을 구축한다. 또 시장 상황을 고려해 추가 투자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증권업계 전망을 종합하면 두산 전자BG는 올해 매출 2조5천억 원, 영업이익 8천억 원 안팎을 거둘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SK실트론의 실적을 더해보면 웨이퍼 및 소재에서 올해 기준으로 연간 매출 4조5천억 원, 영업이익 1조 원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이주형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두산 전자BG는 생산능력과 고객사가 동반으로 확장되면서 중장기 실적 증가 가능성이 추가로 높아졌다"며 "최근 대만 웨이퍼 기업(글로벌웨이퍼스)은 내년 하반기로 예상했던 12인치 웨이퍼 공급부족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언급한 만큼 인수 뒤 SK실트론의 영업 환경도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박 회장의 SK실트론 인수라는 승부수는 단순히 인수합병(M&A)을 통한 외형 확대 차원을 넘어서 두산그룹의 체질을 다시 한번 대전환하는 결정적 계기라는 데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0년대까지 OB맥주(옛 동양맥주) 등 소비재사업으로 사세를 확장해온 두산그룹은 2001년 두산에너빌리티(옛 한국중공업) 인수를 기점 삼아 에너지·인프라사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여기에 SK실트론 인수는 반도체 가치사슬(밸류체인)을 추가한 AI 소재·인프라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회장은 기존 두산 전자BG에 이어 2022년 반도체 후공정인 테스트 기업 두산테스나(옛 테스나) 인수 때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사업에 의지를 나타내왔고 가치사슬의 핵심 소재인 웨이퍼로 발을 넓히는 것이다. 웨이퍼-기초 소재(CCL)-테스트까지 전공정부터 후공정을 아우르는 사업 분야를 영위하게 된다.

그룹 차원에서는 AI 인프라 기업으로 변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와 함께 원자력 발전과 가스터빈에서 사업기회를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두산밥캣의 건설기계, 두산로보틱스의 로봇사업에서는 '피지컬 AI' 기업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박 회장은 AI라는 변화 물결에 맞춰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온 것으로 파악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2019년 세계에서 5번째로 개발한 가스터빈이 최근 AI 데이터센터의 '온사이트 전력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부터는 기술확보와 조직 정비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두산그룹은 1년 전부터 피지컬 AI 혁신을 담당하는 조직인 'PAI(피지컬AI)랩'을 두산 지주부문에 신설해 이 조직에 장기 로드맵 수립, 선행 기술개발, 폭넓은 협업과 투자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겼다 지난해 10월부터는 AI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대표적 빅테크인 엔비디아와 건설기계, 발전기기, 로봇 분야에서 피지컬 AI 강화를 위한 협업관계를 맺고 있다.

박 회장은 AI 시대에 발 빠른 선제적 대응이 도약을 이끌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AI가 경제 전반에 미칠 파급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며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한 성공 방정식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사실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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